○…황비서 일행의 필리핀 이동작전 「H아워」는 18일 오전7시20분. 황비서 일행을 태운 중국민항 전세기가 활주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황비서 일행은 전날밤 34일간 머무르고 있던 북경(北京)주재 한국대사관 영사부를 떠나 북경 남원(南苑)공항 근처 군기지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이날 오전 공항에 도착했다.
중국당국은 오전5시부터 공항에 경비병력을 배치했으며 한참 뒤 마이크로버스편으로 황비서 일행이 도착하자 곧바로 비행기로 안내, 탑승케 하는 등 미리 짜여진 시나리오대로 기민하게 움직였다.
남쪽으로 방향을 잡은 중국민항 전세기는 중국남부 해안도시인 하문(廈門)에 잠시 기착했다가 곧바로 기수를 필리핀으로 돌렸다.
○…황비서 일행은 17일밤8시 007영화를 능가하는 「허허실실(虛虛實實)」전법으로 대부분의 취재진을 따돌린 채 영사부를 빠져나왔다. 중국당국은 한국특파원 등 영사부 앞을 지키던 취재진이 저녁식사를 하는 「취약시간」을 이용, 영사부에서 고속도로로 빠지는 동삼환로 7개차로를 7대의 오토바이와 차량 1대로 가로막은 뒤 3대의 흰색 마이크로버스를 동원, 황비서 일행을 빼돌렸다.
영사부 정문을 빠져나온 3대의 버스중 2대가 주로 사진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는 서쪽 길로 방향을 잡아 눈길을 끄는 사이 황비서 일행을 태운 나머지 1대는 본사기자가 혼자 지키고 있던 동쪽 출구로 방향을 돌렸다.
황비서 일행의 버스는 강한 전조등 불빛으로 내부확인이 어려웠으나 버스내부에는 고개를 깊게 숙인 2,3명을 포함해 6,7명이 긴장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버스는 공안차량의 경호속에 질풍처럼 남원(南苑)공항쪽으로 달렸다.
▼ 언론 완벽하게 따돌려 ▼
○…북경을 떠난지 약 5시간만에 필리핀에 도착한 황비서 일행은 필리핀주재 한국대사관 직원과 필리핀 군정보요원의 영접을 받으며 비행기를 내렸다. 온갖 정보망을 동원, 황비서의 도착장면을 취재하려던 한국과 일본 특파원을 비롯한 수많은 기자들을 완벽히 따돌릴 정도로 훌륭하게 작전이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황비서를 포함한 5명의 일행은 기다리던 사람들로부터 약30여분간 설명을 들은 뒤 이번에는 필리핀 공군 헬리콥터를 탔다.
목적지는 마닐라 북쪽 2백50㎞ 지점에 위치한 휴양도시 바기오.
황비서 일행은 비좁았던 북경 한국대사관 영사부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안락한 휴양지에 도착한 순간 과감하게 시도한 망명이 거의 현실로 다가왔음을 실감, 눈시울을 적셨다.
○…황비서 일행을 태운 헬기는 오후 3시54분 바기오의 로아칸공항에 도착했다.
목격자들은 두대의 헬기에서 내린 일행이 모두 16명이었다고 밝혀 북경에서 출발한 황비서와 김부실장 등 5명외에 상당수의 한국대사관 관계자와 경호요원 등이 합류한 것으로 보인다.
일행은 공항에 도착한 즉시 차량을 이용해 밝혀지지 않은 곳으로 떠났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 도착지등 온갖說 난무 ▼
○…황비서 일행이 치밀한 작전에 의해 필리핀으로 이동하는 동안 마닐라 현지에 진을 치고 있던 수많은 기자들은 확인이 불가능한 갖가지 「루머성 정보」때문에 마닐라 시내와 공항을 몇차례씩 왕복하는 등 곤욕을 치렀다. 황비서 망명작전의 당사자인 한국대사관측이 철저히 함구로 일관하고 있는데다 북경과 서울 등지에서 전해지는 소식들도 시간대별로 변해 도착장소는 물론 황비서가 필리핀에 도착했는지 여부마저 확인하기가 힘들었다.
○…황비서 일행이 무사히 필리핀에 도착함에 따라 앞으로의 관심사는 그가 과연 언제 최종 목적지인 한국으로 갈 것인지에 집중되고 있으나 이 또한 그의 마닐라행만큼 언론이 추적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영사부가 북경시내에 있어 비록 멀찍이나마 접근이 가능한 것과는 달리 바기오 휴양지는 산악지대에 위치, 일반인의 접근이 어려운데다 필리핀이이번 망명사건에는 직접 당사자가 아니어서 진전상황이 알려질 가능성이 별로 없다.
이 때문에 현지에서는 황비서 일행이 최종 목적지인 한국에 도착할 다음달까지는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북경·마닐라〓황의봉·정동우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