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왜 지금 내각제인가

  • 입력 1997년 3월 27일 19시 55분


원칙적으로 우리는 의원내각제(議院內閣制)를 지지한다. 반세기 헌정사 굴절의 대부분은 과도한 1인 권력집중체제에서 비롯되었다. 권력집중의 폐해를 막기 위해 우리나라도 장기적으로는 대통령중심제 보다 내각제로 권력구조를 바꿔나가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기본 입장이다. 세계적으로도 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가 훨씬 많으며 합리적 국가운영의 모범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지금 정치권에서 불거진 내각제 개헌론은 그 제기 방법에서부터 문제가 있다. 창당때부터 내각제를 주장해온 자민련은 그렇다 해도 국민회의가 야권(野圈)후보단일화를 통한 정권잡기의 수단으로 내각제에 접근하는 것은 다분히 정략적이다. 신한국당 내부에서 부쩍 목소리가 커진 내각제론 역시 한보와 金賢哲(김현철)씨 의혹으로 흔들리는 여권이 국면전환용 또는 위기탈출용으로 내놓은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사고 있다. 특히 당내 후보경선에서의 유불리(有不利)에 따라 내각제 찬반 양론으로 갈리는 모습도 보기에 좋지 않다. 권력구조의 변경은 국가는 물론 국민의 일상생활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막중한 대사(大事)다. 최종적으로 주권자인 국민이 선택할 문제지만 정치인들은 국가와 민족의 먼 장래까지 내다보는 대승적 견지에서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특정정치인이나 정파 정당의 정치적 목적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제기될 사안은 절대 아니다. 그럼에도 지금 정치권의 개헌논의는 정당 정파의 이해득실이나 지분 나눠먹기 차원에서 책략적으로 거론되는 느낌이다. 개헌제기 방법이 잘못된 것이다. 시기적으로도 적절치 않다. 대통령선거는 이제 8개월여 앞으로 다가와 있다. 개헌안공고와 국회의결 국민투표 등 개헌절차를 밟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특히 국회의결은 재적 3분의2이상의 찬성이 필요해 현재의 의석분포상 3김씨의 합의없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또 설령 개헌을 한다해도 지금의 정치풍토나 수준, 국가여건상 내각제를 제대로 꾸려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파간 이합집산과 그에 따른 정치적 혼란은 물론 안보불안 경제불안의 우려가 크다.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은 최근 잇따라 「임기내 개헌불가」방침을 밝혔지만 여권의 극비 「개헌검토문서」까지 보도되는 등 개헌을 둘러싼 혼란과 의구심은 계속 확산되고 있다. 경제는 한없이 추락하고 민생의 주름은 깊어가는 데도 정치권이 온통 이 문제에만 매달려 국력을 소모할 수는 없다. 거듭 강조하지만 지금의 개헌론은 문제제기 방법과 시기가 틀렸다. 권력집중의 폐해를 확인하고 그 반성 위에서 내각제가 논의되는 것은 이해하나 우선은 현행 헌법으로도 운용의 묘(妙)를 살리면 권력분산은 충분히 가능하다. 개헌문제만 나오면 많은 국민들이 특정인의 정권욕을 의심하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정치권은 정략 차원의 소모적인 개헌논의를 자제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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