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이어령/한 미래학자가 던진 충격

  • 입력 1997년 3월 30일 20시 03분


『아시아가 서구세계와 서구의 젊은이들에게 과연 무엇을 일깨워줄 수 있을까』 세계적인 미래학자 존 내이스비트는 그의 저서 「아시아 트랜드」에서 그렇게 묻고 있다. 그리고 뜻밖에도 그 해답으로 20세의 한국청년 최명석의 이름을 들었다. 아마 이 돌연한 발언에 대해 가장 큰 충격을 받게 될 사람은 자존심을 상한 서구인도, 혼다 오토바이로 질주하며 우쭐대는 일본의 젊은이들도 아닐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한국인 자신일 것 같다. 왜냐하면 서구 세계와 그 젊은이들의 길잡이로 손꼽은 그 대단한 영웅의 이름을 한국인 자신이 모르고 있었던 탓이다. ▼도덕적인 한국인 최명석▼ 그러나 그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면 그 충격은 더욱 커질 것이다. 최명석은 삼풍백화점이 붕괴되었을 때 그 현장에서 열흘동안이나 매장되어 있다가 기적적으로 구출된 젊은이다. 비록 상상을 초월한 그의 정신력과 끈기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보냈지만 우리는 그의 이름을 영웅으로 오랫동안 기억해 주진 않았다. 대체로 지금까지 한국의 젊은이가 영웅이 되었던 것은 황영조처럼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금메달을 따거나 김주열처럼 시위현장에서 총에 맞아 쓰러지거나, 그렇지 않으면 전태일의 경우처럼 분신자살해 정치적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였다. 하지만 내이스비트의 관점은 다르다. 그는 아시아의 희망을 단순한 경제발전이나 정치적 문제에서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최명석의 경우에 있어서도 그의 극적인 생환과정보다는 오히려 생환한 뒤 각 기업들이 그에게 손을 뻗친 선심과 유혹을 뿌리친 그 용기에 대해 놀라움을 표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범죄와 폭력, 그리고 사람들이 겪고 있는 비극은 물론 영웅적 행위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상업적으로 철저하게 이용하려는 미국인의 행동과 최명석의 경우를 한번 비교해 보라』는 것이다. 『그들은 내가 겪은 고통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 사람들은 나를 이용해 그저 이익을 얻으려는 것 뿐이다』며 그 제안들을 일축해버린 한국 젊은이의 말을 소개하면서 그는 아시아에 아직도 남아있는 인간의 가치와 희망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것이야 말로 「전 세계의 도덕적 부활을 점화시키는 한점의 불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내이스비트가 우리에게 던진 가장 큰 충격은 우리가 수치스럽게만 생각했던 삼풍사건 속에서 한국의 몰락이 아니라 오히려 아직도 한국에 남아있는 소중한 문화적 가치를 발견하고 지키려 한 그의 지성이다.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내이스비트가 들을 수 있었던 것을 왜 우리는 들을 수 없었는가 하는 충격이다. 그의 눈에는 크게 보이는 것이 어째서 우리 눈에는 그처럼 하찮게 비쳤는가 하는 충격이다. 우리는 절망으로만 보이는 암흑이 어떻게 해서 그에게는 전세계를 점화하는 희망의 불빛으로 보였는가 하는 충격이다. ▼희망의 불씨 살려보자▼ 삼풍백화점의 옛날 이야기를 다시 꺼내자는 것이 아니다. 지금 나라 전체가 무너져 내려 앉는다고 소리치고 한탄하고 냉소하는 사람은 많아도 그런 붕괴 속에서도 붕괴되지 않은 미래의 불꽃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지성의 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내이스비트의 충격은 붕괴보다는 아직 붕괴되지 않은 것들을 찾아내고 그것을 소중히 지켜가는 노력이야 말로 참된 지성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어령<이화여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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