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대기자] 鄭泰守(정태수)한보그룹 총회장이 지난해 4.11총선 직전에 회사자금을 횡령하는 등의 방법으로 조성한 비자금중 33억원을 현금으로 빼내 쓴 사실이 확임됨으로써 이 비자금의 사용처에 대한 검찰 수사결과가 주목된다.
당시 정황상 이 돈은 한보가 선거자금으로 정치권에 뿌린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정총회장은 총선 전날인 4월10일 무려 10억원을 현금으로 인출, 이 돈이 선거막바지에 몰린 정치인들에게 「실탄(實彈)」으로 지급됐을 가능성이 높다.
정총회장이 직접 작성한 「일일자금 수지상황표」에 따르면 4월 10일 이후에는 전혀 비자금 인출이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이 돈이 대부분 선거지원용이었음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정총회장이 국민회의 權魯甲(권노갑)의원 등 정치인에게 전달한 뇌물액수가 5천만원에서 1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총선 전날 자금을 받은 정치인은 최소한 10명 이상이며 33억원 전액이 선거자금 지원 명목으로 쓰였다면 돈을 받은 정치인은 30명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한보그룹 周圭植(주규식)전무 등 재정본부관계자들은 1차 수사과정에서 『정총회장이 지시할 때마다 출납부 직원이 한보법인 통장에서 현금을 인출, 포대에 담아 정총회장에게 전달했다』며 『규모는 대략 2억∼3억원씩이었으며 월 7,8회 이상 인출한 경우가 많았다』고 진술했다.
주씨는 또 『정총회장이 돈을 마련한 시기는 주로 정치인들이 후원하는 단체가 주관하는 행사와 (정치인에게)인사를 하는 시기였던 것으로 안다』고 진술했다.
재정본부 직원 박모씨는 『현금인출한 자금은 수지표 지출란에 「아산만 공사비」라고 표기했으며 94년 명절무렵 수십억원이 인출된 경우도 있었다』며 『여직원들이 돈이 든 무거운 포대를 지고 가는 것을 보고 실소한 적도 있다』고 진술했다.
또 한보가 극심한 자금난에 몰렸던 지난해 10∼12월에 91억원이 인출된 것도 주목할만한 대목. 막바지에 몰린 한보가 「막판 로비」를 벌였을 가능성이 크다.
검찰이 정총회장의 일일 자금수지표를 근거로 돈을 받은 정치인을 몇명이나 밝혀낼지 관심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