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말 신한국당의 노동법안 날치기처리 과정은 정당운영의 비민주성을 단적으로 드러내준 사건이었다. 1년전 정치에 입문했을 때만 해도 『거수기가 되지는 않겠다』고 포부를 밝혔던 초선의 A의원은 법안처리 찬성경위와 그때의 심경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법안처리 며칠 전 당지도부는 초재선 의원들을 여의도 모 음식점으로 불렀다. 그 자리에서 주요당직자들은 「누구때문에 금배지를 달았느냐. 공천을 주고 선거자금까지 대주었는데 당론을 어길 수 있나. 그렇게하려면당을떠나라」고 무조건 찬성을 종용했다. 협박이었지만 아무도 이의를 달지 못했다. 당에서 공천을 주고 자금을 대준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참담했다』
최근 정치권 내부의 진통은 두갈래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권력분점논의(또는 내각제논의)와 당내 민주화논의가 그것. 이 두가지 논의는 권력운용과 정당운영의 비민주적 체질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우리 정당의 민주화 수준에 대해 정치적 계산에 밝지 않은 편인 여야 초선의원 26명의 의견을 개별적으로 들어본 결과 결론은 예상대로였다. 신한국당은 자문에 응한 의원 14명중 13명이 『문제가 많다』 또는 『심각하다』고 평가했다. 나머지 한 명도 『과거에 비하면 많이 달라져 가능성이 엿보인다』는 정도였다. 국민회의도 비슷해 6명중 5명이 부정적이었다. 한 명만이 『신한국당보다는 낫다』고 자위했을 뿐이다. 자민련은 6명 전원이 상명하복에 익숙한 관료출신인 탓인지 『큰 문제 없다』고 하면서도 당내 언로를 보다 활성화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초선의원의 문제점제기와 원인진단은 소속에 상관없이 비슷했다. 토론부재, 의사결정과정의 다수의원 소외, 일방통행식 당론하달 등의 문제점이 거론되고 1인지배중심의 정당구조, 총재의 전횡적인 공천권행사, 당내 언로를 봉쇄하는 가신정치 등이 원인으로 지적됐다. 궁극적으로 정당운영의 비민주성은 군사독재와 그 부산물인 3김정치의 소산이라는데 이견이 없었다.
『지금까지 한국의 정치지도자들은 권력투쟁에만 몰두, 대화와 토론에 바탕을 둔 진정한 의미의 정치가 존재할 수 없었다. 대신 계보정치 패거리정치가 난무, 소신있는 정치인은 설 땅을 잃었다. 정당운영의 민주화란 애당초 불가능했다』 지난 95년 민자당부설 여의도연구소장 시절 줄곧 자기 목소리를 내다 쫓겨난 인하대 李永熙(이영희)교수는 자신의 「정치실패」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비민주적 정당운영은 정치를 왜곡시키고 정치인을 굴절시킨다. 선거 때마다 볼 수 있는 정치인들의 줄서기와 공천거래는 정치왜곡의 대표적인 현상이다. 그렇게 해서 금배지를 달게 된 사람들은 「민의의 대변자」가 되기보다는 「보스의 충견」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재선의 신한국당 C의원은 작년 총선때 자신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대통령선거 주자와 후보선출이 유력시되는 대선주자중 누구를 택할지를 놓고 고심중이다.
국민회의쪽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비주류의 金相賢(김상현)지도위의장이 연초 후보경선 출마의사를 비치자 주류측이 벌떼처럼 일어나 『해당행위』라며 제명 등의 조치를 촉구한 것은 보스에 대한 측근들의 맹목적 충성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였다.
정치행태의 비민주성은 가치판단의 혼란과 집단간 갈등을 조장, 우리 사회의 공동체의식을 멍들게 하는 요인이 된다. 대학생조직인 한총련이 군사조직을 뺨치는 경직성을 보이는데서 정치가 우리사회에 드리운 어두운 그늘의 일단을 읽을 수 있다.
자문에 응한 초선의들은 비민주적 정치행태의 극복을 위해 의원총회 활성화, 교차투표 허용, 원내총무와 상임위원장 경선, 지구당 폐지 등 다양한 대책을 제시했다. 이들은 그러나 이같은 대책만으로는 안되고 권위주의에 물들지 않은 민주적 사고방식을 가진 새로운 인물들로 정치판이 물갈이될 때 우리 정치의 근본적인 체질개선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임채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