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원이 최근 발표한 민간단체와 기업체의 대북 쌀지원 허용정책은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충심으로 환영한다. 당국으로서도 적지않은 고뇌와 번민끝에 내린 결정이었으리라 짐작된다.
국민정서나 남북관계의 복합적 요인들로 우리가 북녘땅의 동포를 돕는 일에는 오랫동안 적지 않은 논란이 있어 왔다. 하지만 북한의 식량난은 정치나 경제이론의 바탕에서 풀어나갈 문제가 아니라고 믿는다. 그 이유는 정권과 국민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에서 의외로 간단하다. 때로는 원수이면서도 내 핏줄 내 형제 자매임을 뼛속깊이 인식한다면 도울 수 있고 또 도와야 한다.
긴 안목에서 볼 때 민족의 화해와 통일은 정신자세의 혁명적 변화를 필요로 한다. 아무리 미워도 민족공동체라는 대국적인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 굶는 지경에 빠지면 전쟁터에서도 적에게 먹을 것을 주어야 하는게 인간의 기본 도리다. 이 점을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잊고 살아 왔다.
「쌀」은 식량을 대표하는 곡물이므로 행여나 인민군대가 먹고 우리에게 총부리를 겨누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국민감정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지난 2년동안 우리는 북한의 식량사정을 너무나 분명하게 알게 됐다. 북한당국마저 세상에 드러내놓고 구호를 요청하고 있다.
가능하다면 많은 양식과 생필품을 되도록 빨리 북쪽으로 보내는 게 오늘날 우리의 과제다. 최근 북한을 방문하고 온 캐서린 버티니 유엔식량계획기구(WFP)사무총장은 북한의 식량난이 4월을 넘기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하다며 전세계에 원조를 호소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마치 남의 나라 일인 양 국제기구의 구호사업에 마지못해 동참하는 듯한 인상을 보여왔다.
이제 정부도 기본정책을 밝혔다. 종교 기업 전문직 노동 청년단체들이 몇백원 몇천원씩이라도 힘을 모아 양곡을 보내는 일이 시급하다. 북한 지역의 주식은 사실 쌀이 아니다. 오히려 옥수수 보리 감자 등이 먹기도 편하고 비용도 적게 든다.
며칠 전 강원 평창에 모인 종교지도자들이 1천6백90t의 감자를 사서 20t 대형트럭에 나눠 실어 인천으로 보내며 눈물을 흘리고 돌아왔다. 이 감자는 곧 북한으로 보내질 예정이다. 배급량이 1백g씩이라면 1천6백90만명의 하루 양식이 가는 셈이다. 옥수수 1만t 모으기 운동이 시작됐다. 교회에서 사찰에서 교당에서, 그리고 모든 사회 경제단체들이 뜨거운 호응을 해올 것을 기대해 본다.
이윤구<국제선명회총재특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