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열린 「한보청문회」는 진행방식과 질의응답의 내실면에서 지난 88년 열렸던 일련의 「5공비리청문회」에 비해 별반 나아진 게 없다는 것이 많은 이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여야의원들은 이날 청문회에서 상대당 총재나 의원들에 대한 로비사실을 집중적으로 추궁하고 잇단 의사진행발언으로 불필요한 신경전을 벌여 여전히 당리당략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또 질문에 앞서 증인에게 일장 훈계를 늘어놓아 시간만 낭비하거나 증인을 죄인 다루듯 하는 모습, 증인을 신문하는 것이 아니라 소명의 기회를 주거나 심지어 변호를 하는 듯한 모습도 여전했다.
증인 정태수씨의 묵묵부답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청문회를 앞두고 일각에서는 한보비리의혹사건의 「몸체」인 정씨가 「폭탄선언」을 할지 모른다는 「희망섞인 기대」가 나오기도 했었다. 그러나 정씨는 「발뺌」을 뛰어넘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국민의 지탄을 받기는 했지만 5공청문회 당시 張世東(장세동)전안기부장은 나름대로의 정치적 소신을 밝혀 또 다른 의미에서의 「열혈남아」라는 찬사를 받았으며 鄭周永(정주영) 당시 현대그룹회장은 「천년이 가도 권력자 앞에서는 만용을 부리지 않겠다」는 등 나름의 처세관을 피력하기도 했다.
정씨는 그러나 입을 굳게 봉한 채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 『재판을 받고 있기 때문에 대답할 수 없다』는 등으로 일관했다. 특히 『계류중인 재판에 불리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국회의원 1만명이 물어도 대답할 수 없다』며 증언을 사양한 것은 정씨가 미리 준비한 「비장의 카드」. 「구치소청문회」는 지난 93년9월 「율곡사업」 국정조사 이후 모두 네차례 있었으나 이같은 변명을 늘어놓은 증인은 한 사람도 없었다.
5공청문회에서 맹활약했던 盧武鉉(노무현) 전의원은 『의원들이 정파적 이해에 따라 필요한 것만 묻고 정씨가 입을 다물면 법적구속력이 없는 청문회의 한계가 그대로 드러났다』며 『국민은 청문회의 질의 응답 자체에 지나친 관심을 쏟지 말고 시국 전체의 흐름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5공비리 청문회 스타중의 한 사람이었던 張石和(장석화)전의원은 『청문회는 재판에 간섭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며 『의원들이 근거자료를 충분히 확보, 한보사태의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이철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