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정태수리스트」수사로 빚어지고 있는 요즘의 어지러운 정국을 「럭비공 정국」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다. 『요즘 지뢰는 굴러 다닌다』는 말도 있다. 검찰의 한보수사가 언제, 누구를 대상으로,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나온 말들이다. 실제 현 정국은 한마디로 한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시계(視界) 제로」 상태다.
하지만 정작 정치권이 극도로 불안해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즉 경사가 급한 비탈길을 굴러 내리고 있는 정국을 제어할 만한 권위나 힘의 진공상태가 바로 그것이다.
지금 정치권은 「정태수리스트」 수사과정에서 사상 유례없이 여야대선주자와 현 정권 핵심실세를 포함한 대부분이 현역의원인 정치인 33명이 무더기로 검찰에 소환되면서 엄청난 충격에 휩싸여 있다. 이들이 대거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게 되자 정치권은 「준혁명」 상황으로 받아들이며 긴장하는 분위기다. 문제는 이같은 「혁명」이 「굴러 다니는 지뢰」처럼 방향도 종착점도 알 수 없어 정국혼란이 갈수록 심화된다는 데 있다. 이미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의 통제력도 상실됐다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더욱이 대선주자들간의 치열한 경쟁과 계파갈등으로 구심점 없이 표류하고 있는 여권의 정치력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다.
따라서 한보사태 수사는 검찰의 독자적인 논리에 의해 진행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나 검찰 내부사정도 극히 복잡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정치권과 검찰의 제동장치가 모두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그동안 정치논리에 의해 깊은 상처를 받은 검찰이 명예회복에 집착, 자칫 「과수(過手)」를 둘 경우 정국은 헤어나기 어려운 수렁에 빠질 수도 있다는 정치권의 우려도 이에 근거하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정태수리스트」 수사의 목적은 크게 두가지로 분석되고 있다. 하나는 정치인들의 부도덕성에 대한 들끓는 비난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검찰이 한보사태의 「몸체」에 접근하기 위한 시간벌기다.
정치권이나 검찰이나 한보사태를 마무리짓기 위해서는 「몸체」인 「金賢哲(김현철)의혹」과 「92년대선자금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한보사태의 마무리는 본질적으로 새로운 「파국」을 잉태할 수밖에 없다. 「김현철의혹」과 「92년대선자금의혹」의 진상이 일부나마 밝혀진다 하더라도 현정권의 존립기반이 흔들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3김(金)청산론」이 자연스럽게 급부상하면서 대대적인 정계개편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이 무너진다면 김대통령과 정치적 공생관계인 金大中(김대중)국민회의총재 金鍾泌(김종필)자민련총재도 버티기 어려울 것이란 이유에서다.
그러나 「한보불길」은 도대체 종잡을 수없어 이조차도 불확실하다. 나아가 「3김」을 대체할 만한 정치세력이 아직 형성되지 않아 「3김청산 이후」는 더욱 불확실하다.
〈임채청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