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賢哲(김현철)씨가 만든 사조직으로 최근까지 언론의 논조와 이에 대한 대응방안 등을 김씨에게 보고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언론대책반」의 실체는 무엇일까.
공보처 전문위원 姜吉模(강길모·35)씨는 공조직개념으로 운영되는 「언론분석팀」이 있고 현철씨의 사조직 형태인 「언론대책반」이 별개의 조직으로 활동했으나 시중에서는 한 조직인 것으로 소문이 돌고 있다고 밝혔다.
90년말부터 언론분석팀의 팀장을 맡고 있는 강씨는 12일 본보기자와 만나 『분석팀과 대책반이 서울 광화문 일대에 사무실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이같은 혼란이 생긴 것 같다』며 처음으로 분석팀의 실체와 활동을 공개했다.
언론분석팀은 3당합당으로 민자당이 출범한 뒤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이 대표최고위원을 맡았던 90년 5월 당시 김대통령의 비서였던 李性憲(이성헌·현 신한국당 서대문갑지구당위원장)씨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씨가 연세대와 고려대출신의 후배 4명을 모아 민자당 매체홍보팀으로 발족시킨 이 팀은 점차 인원이 늘어나 92년 대선 때는 모두 12명이 활동했다.
강씨는 이 팀의 발족 동기에 대해 『당시 김대통령은 바쁜 일정으로 신문과 방송의 보도내용을 자세히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따라서 김대통령으로서는 매일의 주요 쟁점과 언론에 비친 자신에 대한 여론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92년 대선 때까지 언론분석팀의 주요업무는 김대통령에 대한 보도내용 요약과 정치 현안에 대한 언론의 논조 분석. 이들이 분석한 보고서는 이성헌씨가 당시 김영삼후보와 매일 새벽 함께 조깅을 하면서 일단 구두보고를 했고 그후 6,7장의 보고서로 작성해 김후보에게 전달했다.
정규 보고서 외에도 대통령후보 경선 때와 대선 때는 경선 경쟁후보인 李종찬씨와 대선 경쟁후보인 金大中(김대중) 鄭周永(정주영) 朴燦鍾(박찬종)씨에 대한 보도내용을 분석, 특별보고서 형식으로 김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들은 대선 후 김대통령과 함께 청와대로 들어갈 것으로 기대했다가 청와대 입성이 좌절되자 청와대 정무비서가 된 이성헌씨가 마련해준 신문로빌딩 809호로 사무실을 옮겼다.
대선후 이들의 분석대상은 정치적 현안보다는 문민정부 출범 후 진행된 개혁에 대한 언론의 평가와 시각, 언론이 지적하는 개혁의 문제점으로 바뀌었다. 이들이 작성한 보고서는 대선 때와 마찬가지로 이성헌씨에 의해 계속해서 매일 아침 김대통령에게 직접 전달됐다.
이 언론분석팀의 역할이 알려지면서 현재 대선주자 대부분은 각자 언론분석팀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 강씨의 주장.
그러나 이들은 93년 7월 언론에 의해 자신들의 존재가 알려지고 대통령을 보좌하는 일은 공조직이 맡아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공보처 전문위원으로 신분을 바꾸게 된다.
인원도 8명으로 줄게 되고 94년1월부터는 이들중 2명이 청와대 정무관련 부서로 지원근무를 나가 현재는 6명만이 공보처에 남아 있게 됐다.
언론보도 분석대상도 국정전반으로 확대됐으며 이들이 작성하는 보고서는 대통령뿐 아니라 각 행정부처 장관들에게도 전달됐다.
강씨는 『우리가 소문대로 「언론대책반」을 운영했다면 언론보도를 규제하고 어느 방향으로 이끌어야 했을 것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만약 언론대책이 있었다면 우리들의 보고서를 토대로 고위층에서 이루어졌지 우리쪽에서 직접 언론대책을 건의한 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이현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