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泳三(김영삼)대통령은 한보사태 발생 이후 한동안 「침잠(沈潛)」상태에 빠졌었다. 밤잠을 못이루었다는 얘기도 많았다.
이같은 분위기가 다소나마 바뀐 첫 계기는 지난 1일의 여야영수회담이었다. 그후 경제5단체장과의 오찬회동(4일) 등 각종 공식석상이 계속되면서 좌중에 농담도 건네고 파안대소하는 모습을 되찾았다. 식목일행사(5일)와 국가조찬기도회(16일)에서는 「위기는 기회」라는 말을 힘주어 강조하기도 했다.
지난 14일에는 南悳祐(남덕우) 申鉉碻(신현확)씨 등 두 전직총리와 오찬을 나눈데 이어 최근에는 언론계 등 각계인사들과 만나 난국수습 방안을 경청하는 등 본격적인 여론수렴 작업에 나섰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18일 『대통령은 지금 한보정국이 끝난 뒤의 국정운영구상을 가다듬고 있다』고 전했다.
물론 김대통령의 심경이 밝은 것만은 결코 아니다. 무엇보다 오는 25일 차남 賢哲(현철)씨의 청문회 증언을 계기로 여론의 풍향이 드세질 경우 현철씨의 사법처리를 피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한보사태와는 관계없이 「별건(別件)구속」사태로 몰릴 가능성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또 민주계 중진들이 잇따라 검찰에 소환되면서 「현철씨를 살리기 위한 음모」라는 반발이 거세게 터져 나오는 것도 김대통령의 걱정거리다.
비서실도 여전히 맥빠진 분위기다. 여론과 검찰의 「압력」에 떼밀리다시피 정치인 소환조사가 시작된 이후 비서실의 무력감은 한층 심해지고 있다. 金守漢(김수한)국회의장에 대한 조사를 막아보려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자 청와대내에서는 「국정 장악력이 없어졌다」는 자탄의 소리가 무성하다.
현재로서는 한보정국이 더 큰 파란없이 마무리되면 김대통령이 내달 중순부터 난국수습구상의 일단을 펼쳐보일 것이라고 청와대 관계자들은 전한다. 상처입은 민주계도 추스르고 △정치개혁 △남북관계개선 △대선후보결정 등 정국타개방안을 마련할 것이라는 얘기다.
문제는 김대통령이 쓸 수 있는 카드가 상황 변전(變轉)을 따라잡기 힘들다는 점이다. 그래서 김대통령의 고민은 갈수록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동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