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구축을 위한 4자회담의 공동설명회 후속회의가 식량지원을 먼저 보장하고 미국의 경제제재를 완화하라는 북한의 무리한 요구로 무기연기된 것은 유감이다. 4자회담에 대한 기대가 큰만큼 사실상 결렬과 같은 무기연기는 여간 실망스러운 것이 아니다. 이로써 4자회담 성사(成事) 전망은 다시 불투명해졌다. 그러나 남북한 및 미국이 실무접촉을 계속하기로 한 점으로 미루어 아직 희망은 남아있는 것 같다.
평양정권의 이중성(二重性)과 벼랑끝 전술은 북한과의 협상에서 가장 주의해야할 함정이다. 北―美(북―미) 제네바 핵협상때도 북한은 벼랑끝 몰아붙이기로 상당한 실익을 챙겼다. 북한은 이번 4자회담 공동설명회 후속회의 개최를 먼저 제의하고서도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4자회담 개최문제는 뒷전으로 밀어놓은 채 식량지원에 대한 선(先) 보장을 끈질기게 요구했다. 그러다가 여의치 않자 회의를 결렬시켰다. 이는 북한의 상투적인 외교술책이지만 한미 양국이 더이상 여기에 말려들지 않을 것임을 그들은 알아야 한다.
최근 존 틸럴리 韓美(한미)연합사 사령관은 북한 붕괴를 기정사실로 보면서 한미연합군의 경계태세강화를 강조했다. 서울로 망명한 黃長燁(황장엽) 전 북한노동당비서도 극심한 경제난에 직면한 북한이 마지막 선택으로 전쟁을 도발할 가능성이 있음을 경고했다. 한편으로는 식량을 구걸하면서 또다른 한편으로 군비를 증강하고 섣부른 불장난을 할 경우 스스로 패망을 재촉하는 것임을 평양정권은 직시할 필요가 있다. 우리로서도 전쟁억지와 유사시에 대비한 만반의 태세를 갖춰야 한다. 특히 내부의 산만함을 추스르고 분열을 최소화해서 안보태세강화에 힘을 모아야 한다. 한미공조에 빈 틈을 보여서도 안된다.
4자회담은 절대로 북한의 식량확보를 위한 협상으로 이용될 수 없다. 북한이 당초부터 4자회담을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해도 사사건건 식량지원을 고리로 거는 것은 말이 안된다. 지금처럼 북한이 식량을 확보하는 데만 혈안이 돼 무리한 요구를 계속한다면 4자회담이 성사되기는 어렵다.
4자회담 공동설명회 후속회의에 나온 북한 수석대표 金桂寬(김계관) 외교부 부부장은 식량지원 요청과 4자회담 수락은 별개의 문제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북한은 이제 그에 맞는 행동을 보여야 한다. 더이상 통하지도 않는 이중성과 벼랑끝 몰아붙이기를 버리고 솔직하고 진지해져야 한다. 그래야만 金正日(김정일)정권이 난국을 헤쳐 나갈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과 미국이 제주정상회담을 통해 4자회담을 제의한지도 1년이 넘었다. 아직 그 제의는 유효하다. 평양은 신중히 검토해 가부(可否)간 확실한 대답을 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