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공동체를 위하여]유권자가 깨어야 정치도 맑아진다

  • 입력 1997년 4월 24일 07시 57분


한보사건의 수사가 계속되면서 돈받은 국회의원들이 줄줄이 밝혀지고 있다. 사람들은 한결같이 정경유착과 부패한 의원들을 비난한다. 그러나 한번쯤 그 불행의 뿌리가 투표로 심판하는 유권자, 곧 우리의 선택에 있음을 생각해보면 어떨까. 『정치인들이 뇌물성 자금을 받은 것은 비단 한보만이 아닐 것이며 이번에 거론된 정치인뿐만이 아닐 것이다. 국정을 따져야 할 국회의원들이 뇌물 대가로 특혜대출 압력을 넣었고 국감에서 이를 따지지 않아 어마어마한 국고손실을 초래했다. 이렇게 국회의원들이 직무유기를 하게 된 근본 원인은 선거를 치르기위해 검은 돈이 필요하고 그 돈의 궁극적인 귀착지는 유권자라는 연결고리에 있는 것이다. 깨끗한 선거를 치르지 않는 한 악순환의 고리는 영구히 끊어지지 않는다』(趙成淑·조성숙한국여성유권자연맹이사) 『국회의원이 된 다음 셈을 거의 안합니다. 한달 세비는 5백만원에 아무리 안 써도 지구당 운영비가 적어도 2천만원이상 들어갑니다. 서울은 그나마 사정이 낫지만 아직도 지방에서는 대부분 상가에서 지역 국회의원에게 부고장을 보냅니다. 결혼 주례를 부탁하면서 두툼한 축의금까지 기대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돈받을 준비가 된 유권자들도 적지 않구요』(A의원)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부패한 정치, 타락한 선거의 책임을 가르는 순환논법을 따지자면 끝이 없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새 정치를 여는 열쇠는 유권자들의 손에 있다는 것이 정치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거슬러가면 고무신 막걸리부터 시작해 돈봉투 선심관광까지 유권자들의 얼룩진 그림자를 없애야 한다. 孫鳳淑(손봉숙)한국여성정치연구소장은 『정치인들이 저 돈을 힘들게 얻은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도 얻어쓰는데 나는 왜 못 받나 하는 일부 유권자들의 공짜 심리와 당선만 되면 선거에 들어간 돈이 보장된다고 생각하는 정치인들의 합작으로 선거타락을 부추긴다』며 『깨끗한 선거를 위한 엄격한 법집행과 아울러 유권자들이 몇 푼 안받는 대신 투표로 부패한 사람을 심판하는 권리를 제대로 행사해야만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풀릴 것』이라고 말했다. 유권자들의 의식 개혁없이 공동체로 가는 길은 멀고 험할 뿐이다. 국회의원을 금품제공자 또는 각종 경조사 참석, 이권청탁을 위한 로비창구로 여기는 한 현실은 개선되기 어렵다. 바로 여기에서 공공선을 생각하는 마음, 「나」가 아닌 「우리」를 앞세우는 공동체 의식이 필요하다. 깨끗한 정치는 그것을 밀어주는 유권자들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어떤 수준의 정치를 갖는지는 국민에 달려있다. 정당과 후보들이 타락된 선거, 돈드는 선거운동을 하는 것은 뒤집어 보면 그렇게 하면 표를 얻을 수 있다는 얘기도 된다. 타락한 정치풍토를 비판하면서도 자신이 음식대접을 받거나 봉투를 받아도 죄의식을 안 느끼는 이중적 가치기준을 버려야 한다. 선거법은 금품을 주는 후보자뿐 아니라 받는 유권자도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유권자들도 위법하면 처벌을 달게 받겠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우리는 「정치〓돈」의 등식을 깨는 것이 법과 제도만으로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아프게 체험했다. 『정치인들이 1차적 책임을 져야 하지만 유권자의 책임도 적지 않지요. 우리 사회는 지연 학연 등 사적인 네트워크로 얽힌 사회이고 인맥을 통해 정치적 행동을 하다보니 인맥관리차원에서도 정치부패가 조장되는 측면이 강합니다. 이런 정치관행이나 문화가 개혁되지 않으면 부패를 추방하기 힘듭니다. 법과 제도 개선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으로 유권자 의식과 관행이 바뀌도록 노력해야 합니다』(고려대 徐鎭英·서진영교수) 정치인들에게 기대할 게 없다면 이제는 유권자가 나설 수밖에 없다. 한보는 한번으로 끝내야 한다. 〈고미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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