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이 92년 대선자금문제 해법을 「공개」에서 「공개불가(不可)」 쪽으로 선회하고 있다. 대신 92년 대선자금에 대해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식의 원론적인 「언급」을 하는 쪽으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여권은 한보청문회가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대선자금문제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金賢哲(김현철)청문회」에 이어 불거져 나올 한보정국의 뇌관은 대선자금 의혹일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여권은 이에 따라 그동안 92년 대선자금의 규모에 대한 전면공개에서부터 공개불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와 다양한 수위(水位)의 대선자금해법을 검토해왔다는 후문이다.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가 지난 23일 『대선자금문제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입장을 표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언급한 것도 이같은 고민의 산물(産物)이었다.
문제는 청와대 고위관계자의 이 발언이 전체 대선자금의 「공개」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언론에 비쳐지면서 야기됐다.
청와대 고위관계자의 발언이 계속 대선자금문제에 대한 「공개」로 확산되자 다급해진 신한국당의 朴寬用(박관용)사무총장은 26일 오전 기자간담회에서 『(대선자금 규모를)공개하겠다는 뜻은 아니었던 것 같다』며 수습에 나섰다.
신한국당의 또 다른 고위당직자도 『청와대 인사의 발언은 실수일 것』이라며 아예 별 의미를 두지 않았다.
이처럼 여권이 대선자금문제에 대한 고민을 접고 다시 「공개 불가」쪽으로 원위치한 것은 당시 김영삼후보진영이 선관위신고액(2백84억)은 물론 법정제한액(3백67억원)을 초과지출했거나 한보자금 을 받은 사실을 시인할 경우 정권의 간판을 내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특히 한보정국의 와중에 터져나온 「사전수뢰 의혹」의 폭발성도 고려됐다는 후문이다.
예컨대 95년 지방선거 직전 한보로부터 2억원을 받은 것으로 검찰조사 결과 드러난 文正秀(문정수)부산시장에게 당선 후의 대가를 담보로 금품을 수수한 사전수뢰혐의가 적용될 경우 김대통령도 「사전수뢰의혹」을 비켜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과거 정치관행상 불가피했던 대선자금도 공개하라는 판인데 국민에게 「사전수뢰 의혹」까지 각인될 경우 후유증은 말 그대로 감당키 어려울 것이라는 게 여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고민이다.
신한국당은 그래서 김대통령이 「천문학적 대선자금」을 쓸 수밖에 없었던 과거 관행에 대해 원론적인 체험고백을 하는 선에서 대선자금이라는 「불」을 끄겠다는 심산이다.
〈김창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