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광장/귀순자 체험기]北 툭하면 정전사태

  • 입력 1997년 5월 26일 08시 07분


남한에 왔을 때 가로등이 밤새도록 환하게 비추고 있는 것을 보고서 놀란 적이 있다. 북한에서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어서 솔직히 「전기를 이렇게 물쓰듯 해도 될까」라는 걱정도 들었다. 북한내 전력사정이야 이미 알려진 대로 심각한 상황이다. 일반가정은 툭하면 정전이고 그나마 정전예고라는 것도 없다. 특히 가족이 오순도순 모여 식사를 하거나 얘기꽃을 피울 저녁시간대(오후7∼10시)는 어김없이 정전사태가 발생한다. 전기사용량이 급증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저녁식사때는 종종 「가스등 만찬」이 벌어진다. 무슨 낭만을 찾기보다는 갑작스런 정전으로 인해 전기가 필요없는 가스등을 사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저녁식사만 마치면 일찌감치 잠자리에 드는 것이 북한 사람들에게는 체질화돼 있다. 남한에서 학생들이 밤늦도록 불을 밝히며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일반 가정이 이럴 정도며 공공장소와 거리는 상황이 더 나쁘다. 해가 어스레해지면 특히 여자들은 집밖으로 다니기가 겁이 날 정도다. 다만 수도 평양을 제외한 북한내 다른 지역에서 한밤에도 환한 조명을 받는 곳은 金日成(김일성)동상 주변 정도다. 북한의 전력난은 시골로 가면 더욱 심하다. 함흥에 살다가 92년 북청읍으로 옮겼을 때는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새벽까지는 거의 전기를 쓸 일이 없어 전등은 무용지물이었다. 특히 연료난이 심각한 겨울에 전기사용은 더욱 어려워진다. 북한주민은 당국으로부터 석달치 땔감을 받도록 돼 있지만 그마저 잘 지켜지지 않자 공공용 전기를 무조건 훔치는 이른바 「도전(盜電)」도 빈발하고 있다. 도전이 발각될 경우 범죄 당사자가 사는 지역전체에 한달동안 전기를 끊어버리는 연대책임을 묻기 때문에 주민들은 더욱 불안하게 지내고 있다. 그러나 남한에서는 지나치게 전력을 낭비하는 면이 없지 않아 적절한 절전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여금주> ◇필자약력 △23세 △함흥 회상구역 햇빛초등학교졸업 △회상유치원 교양원 △가족과 함께 94년3월 귀순 △중앙대 유아교육과3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