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가 金泳三(김영삼)대통령에게 『여론이 좋지 않은 만큼 대선자금에 대한 입장표명을 직접 하는 것이 좋겠다』고 「절박한 건의」를 했으나 김대통령은 고개만 갸웃했을 뿐 묵묵부답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대통령의 이같은 태도는 대선자금문제와 관련, 李會昌(이회창)신한국당대표가 밝힌 입장을 고수할 것인지를 결정하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날 청와대 고위인사가 김대통령에게 「대통령의 직접 입장표명」을 건의한 사실이 전해지면서 김대통령의 대선자금에 대한 「입장표명 거부」가 「직접 입장표명」으로 또 한번 반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낳았다.
청와대측은 지난 23일 이대표와의 주례회동에서 김대통령이 「대선자금 공개불가」입장을 밝힌 이후 야권에서 「하야론(下野論)」까지 나오는 등 강력한 반발을 보이자 크게 당황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청와대 보좌진 일각에서는 『이 정도로는 시국수습이 불가능하다』는 반론이 끈질기게 제기돼 왔다. 실제로 일부 수석비서관들은 지난 주말 김대통령에게 거듭 「정면돌파」의 필요성을 진언키로 의견을 모았다는 후문이다.
이와 관련, 한 관계자는 『대통령도 입장표명을 통한 시국수습의 필요성에 동감하고 있었다』며 『대통령에게 잘못된 정보를 입력하는 「외부세력」이 아직도 있는 것 같다』며 의구심을 표시하기도 했다.
청와대의 기류변화는 26일 오전 청와대 관계자들로부터 야당에 대한 유화적 발언이 나오기 시작한 데서 감지됐다. 한 고위관계자는 야권의 강경 반발에 대해 『우리가 야당을 「국정 파트너」로 생각하듯 야당도 여당을 밀어붙여 정국을 파국으로 몰아가는 것을 바라는 입장은 아닐 것』이라고 화해 제스처를 보였다.
이 관계자는 오후 들어 27일로 예정된 야권총재회담을 의식한 듯 『정국이 꼬이고 악화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시국을 푸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 검토하겠으며 대통령에게 「절박한」 건의를 다시 하겠다』고 한발 더 나갔다.
이 관계자의 발언이 전해지면서 이날 오후 청와대내에는 김대통령이 오는 29일 김대통령과 신한국당 대선주자와의 오찬회동 때나 金賢哲(김현철)씨가 기소되는 내주 중 다시 입장표명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전망이 나돌았다.
이같은 전망은 일부 언론에 그대로 보도됐다. 그러자 청와대가 아닌 정부의 다른 고위 관계자는 이날밤 각 언론사에 전화를 걸어 『대통령이 대선자금에 관해 입장표명을 하는 문제를 다시 검토하고 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는 사실이 아닌 오보』라고 통보하는 소동을 빚기도 했다. 이날 청와대에서 벌어진 소동을 정리해보면 청와대의 수석비서관들이 김대통령에게 『대선자금에 관한 입장표명이 불가피하다』고 건의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김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인 것은 「아직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동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