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담화이후 정국]타는 불에 기름…격돌 불가피

  • 입력 1997년 5월 30일 19시 59분


「5.30」 대국민담화는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의 승부사(勝負士)적 기질이 여실히 드러난 정치행위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정치권은 또다시 걷잡을 수 없이 요동치는 것이다. 김대통령이나 참모진은 난국의 불길을 잡는 「소화제(消火劑)」로서의 효과를 기대한 듯하나 상황은 또다른 불길을 일으킨 「발화제(發火劑)」가 된 양상이다. 현안의 핵심인 대선자금 고백에 대해서는 인색하기 짝이 없는 태도를 보인 반면 「중대결심」 운운하며 누가보아도 「협박」으로 느껴질만한 자세를 취했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신한국당내에서조차 「난국수습책이 아니라 새로운 정쟁의 불씨를 만들었다」는 시각이 제기될 만큼 상황은 심각하다. 여야의 대립구도도 한층 각박해졌다. 이제는 「힘」과 「힘」으로 맞부딪칠 수밖에 없는 국면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신한국당은 담화가 끝나자마자 야당을 향해 『국민 모두가 원하는 정치개혁이 좌초된다면 중대한 결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대통령의 결연한 의지를 경청하지 않을 경우 그 끝은 공멸 뿐』이라며 「너죽고 나죽기」식의 통첩을 보냈다. 이에 야당측은 「정국호도용 협박」이라며 「하야(下野)투쟁론」을 목청높여 외쳤다. 상황이 이처럼 전개되는 것은 무엇보다 대선국면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신한국당의 절박한 현실인식이 상황을 한층 각박하게 만들고 있다. 신한국당은 대통령의 담화를 고비로 대선자금 시비를 틀어막고 이른바 「고비용 정치구조 개혁드라이브」와 「경선바람」으로 정국 주도권을 회복하겠다는 태세다. 그러나 정치개혁이 혼자만의 힘으로 밀어붙일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중대결심」 운운한 대목은 오히려 야권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 힘든 걸림돌이다. 야권으로서는 협박에 무릎을 꿇는 자세를 보일 수 없기 때문이다. 국민회의의 한 관계자는 『여당이 「중대결심」으로 배수진을 치고 경선국면에 본격 돌입하면 대선자금 문제를 덮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인데 큰 착각』이라고 잘라 말했다. 여권내부에도 곳곳에 암초가 도사리고 있다. 李會昌(이회창)대표의 대표직 사퇴를 둘러싼 경선불공정 시비로 계속 삐걱거리면 정치개혁 드라이브는 사실상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6월 초나 중순경엔 임시국회가 열린다. 야당은 임시국회를 앞두고 대선자금 공세를 가열시킬 것이고 여당은 국민회의 金大中(김대중)총재에게 초점을 맞춘 「맞불작전」으로 나설 것이 분명하다. 다만 야당이 대선자금 문제를 놓고 「끝장을 보자」는 식으로 나서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 같다. 어찌됐든 김대통령이 「중대결심」 운운하며 「배수(背水)의 진(陣)」을 친 이상 야당도 「파국」을 각오하지 않고는 무한공세를 펼치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하야투쟁」은 「엄포」의 성격이 강하다. 당장은 시끄럽지만 대선자금 문제는 임시국회를 고비로 경선국면의 뒤안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신한국당의 기대는 바로 여기에 근거를 둔 듯하다. 〈김창혁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