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바로세우자]與정치인 3인의 「돈선거」체험담

  • 입력 1997년 6월 6일 20시 17분


「돈 선거」의 실상을 알기위해 정치인 3명의 「고백」을 들어 본다. 수도권에서 출마해 낙선한 여당 정치초년병, 무난히 당선고지에 오른 중진의원, 세 번 도전에 세번 실패한 낙선자가 「익명」을 조건으로 털어놓는 「체험담」은 우리의 선거가 한마디로 「돈뿌리기 게임」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 낙선한 여당 정치 초년병 ▼ 운동권의 양심에는 어긋나지만 솔직히 처음부터 돈을 쓰지 않을 수 없다고 각오했다. 그러나 내 양심의 마지노선은 2억원이었다. 어디 손벌리지 않고 친지들의 도움을 최대한 끌어내면 2억원은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정신없이 선거를 치른 후 나 스스로 놀랐다. 대충 결산을 해보니 법정 선거운동기간인 17일 동안 6억원을 넘게 쓴 것이었다. 몇 달 전부터 쓴 선거운동비용까지 모두 합하면 10억원이 넘었다. 사실 처음엔 당원들에게 『나는 돈이 없다. 일당도 줄 수 없다』고 공언했었다. 물론 멀리서 온 대학후배 등 자원봉사자들에게는 여관비 교통비 커피값은 준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선거운동에 나서자마자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다름 아닌 내 지구당 당직자들이 야당과 무소속 후보의 선거유인물을 돌리는 현장을 본 것이다. 협의회장을 포함한 당직자들도 『위원장은 자꾸 일당 일당 하는데 선거운동하려면 밥도 사고 해야 하는 법이다. 무슨 이념정당원도 아니지 않으냐』고 했다. 당선 가능성이 있는 「유망주」라고 봤는지 대기업을 포함해 기업들이 너도 나도 돈봉투를 갖고 왔다. 받은 게 잘못이었다. 한 번 받으니까 당직자들의 요구도 빗발쳤다. 막판엔 『3천명에게만 돈을 지르자. 10만원씩 해봐야 3억원 아니냐』는 매표(買票) 얘기까지 나왔지만 차마 양심상 그것만은 못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했으면 20억, 30억원은 쉽게 넘었을 것이다. ▼ 당선한 여당 중진의원 ▼ 법정 선거운동기간의 돈만 따지면 내가 쓴 비용이 결코 많다고 할 수 없는 규모다. 한 3억∼4억원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실질적인 의미의 선거비용, 다시 말해 선거를 앞두고 당선을 위해 쓴 돈의 총액을 따지면 얘기는 달라진다. 내 경우 선거 전 3개월여 동안 대략 13억원 정도를 썼다. 물론 법정선거운동기간에 쓴 돈도 포함되지만 대부분은 법정비용 항목에 들어가지 않는 돈이다. 우선 선거를 앞두고 조직점검을 겸해 실시한 지구당 당원단합대회 비용이 거의 1억원 수준이었다. 선거를 앞두고 두차례에 걸쳐 국회의원 의정보고서를 5만부씩 제작 배포하는데 7천만원, 비디오 테이프 제작에 5천만원이 들었다. 여당선거는 읍면동 단위로 구축돼있는 각급 협의회를 가동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가동한다」는 건 「실탄」 지급을 시작한다는 뜻이다. 다섯차례에 걸쳐 모두 3천만원씩을 내려보냈지만 그 정도는 기본경비에 불과하다. 동별 협의회가 모두 11개니까 모두 합쳐 3억3천만원이 든 셈이다. 선거홍보물 인쇄비도 7천만원이 들었다. 위원장인 내가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돈도 만만치 않다. 사람 모인데 가면 밥을 사야 하고 약소하지만 격려금도 줘야 한다. 하루 평균 1백만원은 썼을 것이다. 아마 선거 치르는 동안 내 개인적 지출로 1억원이 넘게 나갔을 것이다. 내 처도 마찬가지였다. 주머니에 들어오는 대로 돈을 썼으니 정확하게 얼마나 썼는지는 계산 할 수도 없다. 솔직히 불법인 줄 알지만 유급자원봉사자도 적지 않게 썼다. 사무실 잡무처리를 위해 1개월 동안 14명을 고용했다. 1인당 60만원씩 총 1천여만원이 들었다. 선거 막판 10일 동안엔 상대방 후보에 대한 정보수집과 「불법 선거운동 감시」를 위해 청년들을 동원하는 게 필수적이다. 대학생과 지구당 청년회원들 40명으로 「기동반」을 편성했다. 여관에서 숙식까지 해결해줘야 했다. 전화부대도 필수적이다. 여대생 30명을 동원해 20일 동안 가동했다. 일당은 3만원. 그러니까 여기에도 2천만원이 들어갔다. 나는 그래도 양호한 편이다. ▼ 세번 낙선한 여당정치인 ▼ 13대 때 처음 출마했다. 그 때는 진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낌없이 돈을 갖다 썼다. 여당 불모지역이었기 때문에 중앙당 지원금도 3억원 정도로 다른 지역보다 적었다. 주변에서도 도와줬지만 내 사재도 털어 10억원을 훨씬 넘게 썼다. 하지만 결과는 1만2천표 차의 패배였다. 선거가 끝나고 보니 「내가 돈을 쓴 게 아니라 뜯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은 당직자 선거브로커들이 다 가져갔다. 선거 막판에 옆에서 「이러다간 불과 10표 차로 질 수도 있다」고 할 때는 정말 시체말로 눈이 돌아갔다. 바로 그 「10표차」 때문에 돈을 쏟아붓다시피 한 것이다. 14대 때는 당에서 1억5천만원, 朴泰俊(박태준) 당시 최고위원이 지역구를 다녀가면서 1억원, 그리고 주변에서 도와준 것까지 합쳐 4억원을 만들어 썼다. 15대 때는 당에서 1억5천만원을 지원받았지만 두번 다 「안되는 게임인데 뭣때문에 돈을 퍼붓나」라는 생각 때문에 돈을 아꼈다. 〈김창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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