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국당의 대선후보 경선구도가 「지역주의」로 흘러갈 것이라는 관측은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돼왔었다.
특히 민주계 주류인 「PK(부산경남)민주계」가 TK(대구경북)출신의 李壽成(이수성)고문을 민다는 징후가 엿보이면서 지역주의에 대한 우려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PK와 TK가 아예 경선 때부터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다.
비(非)영남출신인 李洪九(이홍구)고문과 金德龍(김덕룡)의원의 잇따른 지역주의 경고는 경선가도(街道)의 지하에 숨어있는 지역주의, 아니 지역감정의 문제를 새삼스레 돌아보게 만든다.
이홍구고문은 11일 경남 창원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최근 당의 경선이 조기과열양상을 보이면서 지역주의의 흐름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하고 『지역주의에 편승한 경선운동을 중지하고 정책과 비전을 중심으로 건설적 창조적 경선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고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인터뷰 등 공개활동에서 출신지를 언급하지 말 것 △출신지를 방문해 지지를 호소하거나 대의원들을 개별접촉하지 말 것 △선거캠프 구성에서 지역편중성을 탈피할 것 등 「반(反)지역주의 3원칙」까지 제시했다.
바로 전날엔 김덕룡의원이 민주계 내부의 「지역주의」를 정면으로 비판, 당안팎에 파문을 일으켰다.『가시밭길을 헤치며 민주화투쟁을 함께 해온 동지들이 문민정부 개혁의 계승이란 「이념적 관점」에서 후보를 선택하지 않고 지역주의에 편승해서는 결코 안된다』는 경고였다.
범민주계 모임인 정치발전협의회(정발협)가 PK민주계 중심의 「색깔」을 드러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영남연합」의 논리를 은연 중 노골화하고 있는데 대한 우려였지만 호남출신인 김의원으로서는 극히 이례적인 문제제기였다.
물론 이들 두 사람의 지역주의 경고발언을 「경선전략」 차원에서 해석할 수도 있다. 정발협의 지지를 기대하고 있는 두 사람으로선 정발협이 영남출신인 이수성고문이나 朴燦鍾(박찬종)고문을 선택할 경우 「지역주의적 선택」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는 점을 미리 못박아 둘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정발협이 두 사람의 비판에 애써 「침묵」으로 일관하는 이유도 문제가 커질 경우 향후 자신들의 후보선택이 자칫 지역주의의 수렁에 빠져들 것을 우려했기 때문인 듯 하다.
하지만 지역주의의 「망령」은 이미 신한국당 경선구도의 바탕색을 이루고 있다. 예비주자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나 모두가 자신의 출신지역을 경선의 근거지로 삼기 위해 은밀한 작업에 착수했을 뿐 아니라 지구당위원장들 역시 이른바 「지역정서」를 구실로 줄서기를 하거나 지역단위의 지분찾기에 골몰하고 있는 실정이다.
TK출신들은 「TK역할론」, PK세력은 「영남연합론」 또는 「박찬종 순리론」, 충청권 출신들은 「충청도 대통령 대망론」이라는 선전논리를 확산시키고 있고 김덕룡의원은 「호남지배주주」임을 호언하고 있는 실정이다.
97년 신한국당 경선은 당내 계파간 역학관계나 대선예비주자간 세력판도로 볼 때 「지역대결」로 치달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더 많다.
〈김창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