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대선놀음에 멍석 깔고 흥을 돋울 때가 아니다. 참담하기만 한 경제현실과 증폭하는 사회불안에다 한보사태와 대선자금 의혹으로 느낀 국민들의 의혹과 분노까지 감안한다면 지금은 사실상 총체적 위기상황이라 하겠다. 이런 시기에 일부 언론이 마련한 대선주자들의 TV토론회가 안방을 강타하는 현실을 보면서 「용들의 잔치」에 애꿎은 서민들만 볼모가 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물론 TV를 통한 대선토론회가 과거의 대중유세 방식에 비해 긍정적인 측면은 갖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선거는 아직 반년이나 남아 있다. 조용하고 깨끗한 선거문화를 정착하는데 앞장서야 할 정부여당이 조기과열선거를 부추기고 일부 언론들마저 덩달아 춤을 추고 있다.
현행 선거법은 조기과열선거를 막기 위해 사전선거운동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여당의 경선희망자들을 「8룡」이라 칭하면서 야당의 대통령후보나 총재를 한데 묶어 요란한 국민토론회를 열었다.
국민들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여당의 경선희망자 8명과 야당의 대통령후보를 동일시했으니 대통령후보가 10명이나 되는 것으로 착각할 지경이다. 앞으로도 제3의 대통령후보가 나올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지나 않은지.
게다가 일정한 기준이나 투명성 없이 결정된 토론자들의 편향된 질문으로 토론 자체가 형평성을 잃었다. 대선주자들의 진영마다 불평과 뒷말이 무성하게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도 중앙선관위는 물론 사소한 정치문제에도 온갖 성명전을 펼치는 각 당의 입들은 조용하기만 하다. 깨끗하고 공정한 선거법 마련에 앞장서고 있다는 시민단체들마저 방관하는 모습을 보였다.
최근 진행된 TV토론회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로 조기과열선거를 부추겼으며 이는 사전선거운동을 방지해야 하는 언론 본연의 임무에도 모순된다. 둘째로 경선절차를 완료한 야당에 비해 여당의 예비후보를 모두 참여시킨 방식도 공평성과 형평성을 잃었다. 셋째로 토론회가 지극히 공정하고 신중하게 운영돼야 하는데도 일부 토론자들이 보인 수준이하의 질문은 대통령의 자질과 능력을 검증하는데 실패했다.
지금은 「차기 대통령 뽑기」보다는 「혼란 바로잡기」를 통한 정권말기의 난맥상을 바로세워야 할 때다. 벌써부터 국력을 대선 예비주자들의 경선잔치로 소모해서는 안된다. 새로운 1천년을 준비해야 할 시점에서 언론이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장경우(민주당 부총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