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野 「경선史」에 비춰본 신한국 경선구도]

  • 입력 1997년 7월 12일 20시 44분


신한국당 대통령후보를 선출하는 전당대회일(21일)이 다가오면서 「이번 경선은 과거와 어떻게 다를까」하는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역설한 역사학자 E H 카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이번 신한국당 경선은 92년 민자당 경선을 닮았다. 그러나 정가에서는 이번에는 과거 야당의 경선사와 비슷한 결과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관측을 하고 있다. 92년 민자당경선은 金泳三(김영삼)후보 대 이종찬후보의 양자대결이었다. 이번 신한국당 경선은 李會昌(이회창)후보 대 「반(反) 이회창 후보군」의 다자대결이지만 이회창후보가 김영삼후보와 마찬가지로 「대세몰이」에 의존하고 있는 점은 유사하다. 불공정시비나 혼탁양상이 드러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그러나 「반 이회창 후보군」의 해석은 다르다. 당시 김영삼후보는 지구당위원장 등 2백40여명에 달하는 대규모 추대위원회를 발족시켜 지지자가 20여명에 불과했던 이종찬후보를 압도했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다는 주장이다. 현재 이회창후보가 확보한 지구당위원장 수는 김영삼후보가 확보했던 지지위원장의 절반에 불과하고 대의원 지지율도 30%선에 머물고 있다는 것. 더욱이 이종찬후보가 당시에 경선불참을 선언했는데도 33.2%의 높은 지지를 얻었던 것으로 볼 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이회창후보의 득표력이 과장됐다는 사실이 확인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95년 서울시장 후보경선에서 李明博(이명박)후보가 「김심(金心·김영삼대통령의 의중)」의 절대적 지지를 얻은 鄭元植(정원식)후보에 맞서 37.4%를 득표한 대목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것이다. 그 때문인지 신한국당 내에선 이번 경선이 「결선 뒤집기」가 많았던 과거 야당경선과 「닮은 꼴」이 될지 모른다는 예측도 하고 있다. 70년9월 제7대 대통령선거 후보선출을 위한 신민당 전당대회. 당시 金大中(김대중)후보는 「대세(大勢)」면에서 김영삼후보보다 훨씬 열세였다. 김대중후보는 그러나 2차 투표에서 李哲承(이철승)씨의 도움을 받아 역전승했다. 야당사에서 유명한 79년의 「5.30 전당대회」도 역전극이었다. 총재를 선출하는 이 대회에서 1차투표 결과는 이철승후보 2백92표, 김영삼후보 2백67표, 李基澤(이기택)후보 92표로 이철승후보가 앞섰다. 그러나 2차 결선투표에서는 이기택후보가 김영삼후보를 지지, 결국 김후보가 3백78표로 3백67표를 얻은 이철승후보를 11표차로 따돌렸다. 신한국당 경선은 이래저래 관심이다. 〈김창혁·윤영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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