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열린 신한국당 주요당직자회의에서는 부도위기에 몰린 「기아사태」 등 당면 경제현안 등을 둘러싸고 정부를 질타하는 목소리들이 터져나와 관심을 끌었다. 李會昌(이회창)대통령후보체제 출범에 맞춰 향후 당우위로 당정관계를 이끌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金重緯(김중위)정책위의장은 기아사태와 관련, 『당정회의를 두번이나 요청했으나 경제부총리로부터 「정부에 일임해달라」는 답변만 들은 채 거부당했다』며 정부의 태도에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신한국당은 이날 정부측에 대해 수수방관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책임의식을 갖고 기아정상화에 노력해 달라는 공개요청까지 했다.
그러나 제시한 방안은 △1천7백여 협력업체 자금난 완화를 위한 금융창구지도 강화 △부처간 긴밀한 협조 △금융시장불안과 증시루머방지대책 등 구체성은 별로 없었다. 다시 말해 실제 내용보다 「정부 길들이기」에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한국당 의원들이 이날 대정부질문에서 공직자들의 탁상공론식 행정관행을 질타하고 정권말기의 보신(保身)과 기회주의적 공직사회풍토를 지적한 것도 맥을 같이한다.
아무튼 정권교체기에 집권당 후보가 선출된 후 권력 중심축의 이동조짐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따라서 향후 당정관계에서 당이 강력한 주도권을 장악하게 될 것이다.
우선 신한국당이 마련중인 대선공약 중 당장 내년부터 착수해야 할 시책들은 올 하반기중으로 정부측에 시행방안준비를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또 현 대통령 잔여 임기 7개월간 주요 정책의 결정과정에서도 이후보의 의중이 크게 반영될 전망이다.
현 정부가 연내 처리를 목표로 하고 있는 △중앙은행제도와 금융감독체계 개편 등 금융개혁 △금융실명제 대체입법 및 자금세탁방지법 제정 등에 대해 이후보는 신중론을 내세우며 내년으로 미루자는 입장을 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신한국당은 오래전부터 연내 금융개혁을 반대했으나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의 뜻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입법에 동의했던 것. 결국 권력변동기의 정부는 당의 눈치를 보며 시책을 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원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