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이동욱/박정희를 생각한다

  • 입력 1997년 7월 29일 20시 25분


요즘 朴正熙(박정희)신드롬이 한창이다. 박정희 전대통령의 전기가 쏟아져 나오는가 하면 「실록 박정희시대」라는 연재물을 싣는 일간지도 있다. 또 「실록 박정희 김종필」 출판기념회가 대성황을 이루는가 하면 신한국당의 경선주자들이 대구 경북 대의원들 앞에서 박정희찬양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명분없는 5.16쿠데타 ▼ 고인이 된 인사를 기리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누구든지 생전의 행적에는 공도 있고 과도 있는 법이다. 공을 찬양하는데 인색함이 있어선 안되는 것처럼 과를 지적하는데 비겁해서도 안된다. 그러나 최근 박정희신드롬을 대할 때 공을 칭송하는데 너무 열을 올리는 나머지 과를 지적하는데 소홀함이 있는 것처럼 느껴져 허전함을 금할 수 없다. 물론 그의 18년간의 치적 중에서 경제번영은 칭찬받을 만하다. 하지만 만약 張勉(장면)정권이 계속됐더라도 경제번영은 이룩됐을 것이라고 할만한 이유는 있다. 박정권이 일군 경제번영은 경제번영의 필수불가결한 자본과 기술을 한일수교에 의하여 일본서 들여왔기 때문인데 이는 바로 장정권이 하려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적 평가란 원인을 따지기보다는 결과에 따르는 것이라면 한국의 경제번영은 박정희의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박정희신드롬에서 소홀하게 다루었다고 느껴지는 것은 물론 한둘이 아니지만 가장 허술하게 느껴지는 것은 5.16쿠데타에 대한 평가다. 5.16쿠데타의 명분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장정권하에서의 혼란을 바로잡기 위한 군인들의 궐기라고 하지만 4.19때 비롯된 혼란은 4.19 1주년을 맞으면서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래서 당시의 장정권은 내각제의 정치적 시련 속에서도 「경제제일주의」를 외치면서 일을 막 시작하려던 참이었는데 쿠데타를 맞아 무너진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 당시의 학생시위란 지금처럼 화염병 쇠파이프 시위가 아니고 아무 것도 손에 든 것이 없이 구호만 소리높여 합창하는 것일 뿐이었으니까 경찰의 곤봉도 쓸 데가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혼란을 바로잡기 위해 쿠데타가 불가피했다는 것은 가당치 않은 말이다. 그리고 쿠데타가 불가피했던 이유로서 도탄에 빠진 민생을 들고 있으나 그 당시의 도탄에 빠진 민생은 이승만정권의 탓이지 장정권의 탓이 아닌데도 도탄에 빠진 민생을 구하기 위해 쿠데타를 감행했다는데는 앞서 지적한 이유에 의하여 수긍이 안간다. ▼ 「독재」역기능 직시해야 ▼ 그리고 쿠데타를 일으킨 목적들이 달성된 다음에는 원대복귀하여 군생활을 계속하겠다고 공약하고서도 실제 원대복귀한 군인은 韓信(한신)장군 등 극소수에 불과했고 대다수는 정치에 몸담아 출세한 인사도 많으므로 이는 쿠데타의 불가피성(명분)과는 동떨어진 현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입신출세 야망이야말로 쿠데타의 진짜 동기였을지도 모른다. 박정희신드롬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경제번영을 이룩하기 위해선 그의 독재가 불가피했다고 하지만 유신헌법이 그의 종신집권을 위한 것이었고 야당탄압과 언론통제가 그의 정권안보를 위한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경제개발에의 역기능을 했으면 했지 순기능을 했다고 볼 수 없다. 그런데도 그의 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그의 경제적 업적을 들먹이는데는 개운치 않은 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동욱(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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