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뉴욕에서 열린 4자예비회담은 뚜렷한 결론 없이 본회담 장소를 어디로 할 것인가 하는 정도의 성과를 끝으로 다음 회담을 9월에 재개키로 하고 그 막을 내렸다. 한편 쿠바의 세계청년학생축전에는 당초 한총련대표가 참가할 계획이었으나 학생대표의 「참가포기 귀국결심」 소식이 전해졌다. 이런 가운데 한총련 가입자 일제검거라는 검찰발표가 나오고 서울대를 비롯한 대학의 한총련 탈퇴선언이 잇따르는 등 북한 동조세력의 와해조짐이 뚜렷해졌다.
북한은 쌀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계속 한국 일본 미국에 대해 반 협박조의 이상한 구걸행각을 벌이고 있다. 이에 대해 국내에서는 종교계를 비롯한 많은 민간단체와 시민들이 굶주림에 신음하고 있는 북의 동포들을 돕자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인류애적 인도주의에 호소하는 지극히 당연하고 정의로운 「복음」으로 받아들여져 많은 국민의 공감을 얻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더이상 간과해서는 안될 문제가 있다. 바로 지금 이 시간까지도 북에서 유린되고 있는 인권문제다. 북한정권이 정치범 양심수에 가하고 있는 무자비한 강제수용소에서의 비인도적 만행과 가혹행위에 대해서 눈감아야 할 것인가. 북의 유일체제에 반대한다는 정치적 이유 하나로 굶주림과 고문 질병 속에서 인간이하의 혹독한 학대를 받고 있는 정치범이 20여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는 굶주림을 동정하는 쌀지원의 동포애적 인도주의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가 아닌가.
우리는 과거 「백색독재」에 항거하느라 투옥되고 고문받았던 많은 양심수들이 종교계 언론 인권법률가 야당 등의 끈질긴 투쟁으로 인권을 회복한 훌륭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같은 정의로운 투쟁도 전쟁에 준한 남북 긴장상태를 조성하는 북의 전제봉건왕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말인가. 과연 「북조선」은 우리와 함께하는 동반자가 될 수 있는가. 북에 거주하고 있는 우리의 겨레와 북한정권을 동일시할 수 있을까. 우리가 진정 동정해야 할 대상은 굶주리고 박해받고 있는 북녘 동포와 북한의 양심수다. 아무리 동포애의 발로라고는 하지만 결코 1인독재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동족을 억압하고 있는 「북조선 당국」은 그 대상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쌀지원 역시 분배에 대한 투명성 보장이 선결되지 않는 한 인도주의의 발로라는 거룩한 충정이 자칫 인권탄압의 장본인들에게 「좋은 일」만 시켜주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기우탁(인간능력개발원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