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국당 金潤煥(김윤환)고문은 「정치기술자」란 별명을 갖고 있다. 유신정권시절 언론사에서 유정회 국회의원으로 변신한 이래 오랫동안 정치판에서 살아남아 정권변화기마다 주요역할을 맡아왔고 정치판을 읽는 눈이 빠르고 상황변화에 적응력과 생존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그는 정치적 고비 때마다 자기의 생각과 구상을 마치 화두(話頭)처럼 기자들에게 던지곤 한다. 대개 상대방의 귀에 들어가기를 바라고 의도적으로 흘리는 식이다. 『그게 아이가』라는 식의 반문법으로 툭툭 던지는 그의 발언은 애매한 대목이 많아 해석에서 종종 혼선을 빚는다.
그는 기자들에게 정치적으로 미묘한 발언을 「비보도」를 전제로 흘리는 경우가 많으나 「비보도」 약속이 깨져도 크게 개의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김고문은 자주 설화(舌禍)를 입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와전됐다』는 식으로 파문을 넘기곤 했다. 공교롭게도 그의 발언파문과 외유가 겹치는 경우도 적잖다. 「치고 빠지는」식이었다. 그의 「치고 빠지기」발언의 몇가지 예를 들어본다.
김고문이 대선후보경선 불출마를 결심한 것은 오래 전 일이었다. 그러나 그가 공식적으로 불출마를 선언한 것은 지난 6월3일이었다. 그때까지 그는 『나라고 못할 게 있느냐』며 끊임없이 연막을 피웠다.
김고문이 李會昌(이회창)대표를 밀기로 작정한 것도 이미 지난해 8월경 「영남후보배제론」을 언급했을 때였다. 그러나 그는 상당기간 이대표 외에 李洪九(이홍구) 李壽成(이수성)고문은 물론 李漢東(이한동) 朴燦鍾(박찬종)고문까지도 고려대상에 있는 것처럼 얘기를 흘려 왔다.
김고문은 「영남후보배제론」으로 파문이 일자 『영남사람이라고 대통령이 되지 말란 법은 없다. 「배제론」이 아니라 「자제론」을 얘기한 것이다』고 한발 물러서기도 했다.
김고문의 노련함은 지난3월 「1차 이대표체제」가 출범했을 때 단적으로 드러났다. 그는 유력한 경선예비주자인 이대표체제 출범에 대한 다른 주자들의 반발이 거세자 『난국극복을 위한 최선의 카드로 이대표체제를 지지하나 경선후보로서 이대표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며 교묘하게 이대표체제를 뒷받침했다.
그에 앞서 올해초 노동법날치기에 대한 여론이 극도로 악화되자 김고문은 누구보다 앞서 「노동법 시행유보와 재개정」을 주장, 정치적 기민성을 과시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95년10월 「盧泰愚(노태우)비자금 사건」으로 92년 대선자금이 문제되자 김고문은 『역대 대통령이 여권후보에게 선거자금을 주어온 만큼 金泳三(김영삼)대통령도 선거자금을 받았을 것』이라며 노씨에게 공개를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후 여권의 비공개방침이 굳어지면서 그 역시 더 이상 공개를 거론하지 않았다.
최근 정치권의 이목을 집중시킨 김고문의 「새로운 정치행로 모색」 발언에 대해서도 일단 그는 『와전된 것』이라며 부인했으나 정치권의 시선이 예사롭지 않은 것은 그의 평소 발언스타일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임채청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