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경수로사업이 지루한 협상의 터널을 지나 19일 부지착공식에 들어감으로써 마침내 본궤도에 올랐다. 북한의 핵관련시설 동결과 北―美(북―미)관계개선을 핵심내용으로 하는 북한과 미국간 제네바 핵협상이 타결된 94년10월 이후 약 2년10개월만의 일이다.
경수로사업은 제네바핵합의 내용 중 핵심적인 대북지원사업이다. 따라서 경수로착공은 북한에 의한 핵동결 파기 가능성을 제거하는 동시에 폐연료봉 봉인작업 추진 등 북한의 핵동결 의무를 계속 유지하도록 압박할 수 있는 근거와 수단이 된다.
핵확산저지는 「세계경찰」을 자처하고 있는 미국의 사활적 이해가 걸린 사안으로 경수로사업은 출발초기부터 다분히 국제정치적 역학관계의 산물로 출발했다. 韓美日(한미일)을 집행이사국으로 하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라는 다자간 운영체제가 태어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경수로 사업의 중심역할을 맡은 한국의 특수한 위치로 볼 때 남북관계개선에 미칠 파급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우선 경수로사업은 규모로 볼 때 분단이후 최대의 남북간 교류사업이다. 경수로 2기가 완공되는 8년여동안 남북한 근로자들은 최대 하루 7천명, 연인원 1천만명이 동원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89년 이후 올 상반기까지 남북간 인적교류가 2천1백여명에 그친 점에 비춰보면 엄청난 규모다. 또한 공사에 소요되는 건설중장비만도 총중량 1백여만t이 북한에 수송된다.
공사현장에서는 남북한 근로자간 직접접촉이 이루어질 전망이다. 경수로사업 비용의 대부분을 남한이 부담하는 것은 물론 한국전력이 KEDO의 주계약자여서 4개 시공업체 관계자가 모두 한국인으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공사현장이라는 제한적 공간이지만 이곳은 북한당국의 간섭이 배제된 「특구」라는 점에서 남북한근로자간의 자유로운 접촉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또 경수로사업에서 한국의 중심적 역할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자연히 이를 통해 향후 남북관계개선에 미칠 긍정적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
그동안 착공에 앞서 경수로관계자들은 수시로 북한을 다녀왔으며 지난달 28일 신포 금호지구에 개설된 KEDO사무소에는 분단이후 처음으로 남한 외교관 2명이 파견돼 상주하기 시작했다. 금호지구의 공사현장에서 한국근로자와 관련해 발생할 모든 영사업무는 우리 외교관이 처리하게 되는 것이다.
기술진 80여명과 국산중장비도 이미 들어갔으며 지난 4일에는 공사현장과 서울의 한전본사를 잇는 직통전화도 개설됐다.
경수로기획단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경수로협상 과정에서 북한과 합의한 출입국 통관 노무 의료부문 등의 협의내용은 남북교류의 구체적인 법률과 제도 마련에 기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북한은 경수로사업이 몰고올 개방의 파고를 막기 위한 대책마련에 고심하는 흔적이 역력하다. 공사현장을 인근 지역과 철저히 고립시키는 한편 공사장비와 인원의 판문점 통과를 막은 것도 이 때문이다.
〈정연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