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백70만 직장인과 2백여만 농어민의 돈인 국민연금기금을 잘못 운용해 연간 수천억원씩의 손실을 보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이에 대한 비판여론이 들끓고 연금기금의 공공부문 전용이 위헌소지가 있다는 법원의 결정도 내려졌다. 그런데도 그같은 방만한 관리 운용이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은 연금가입자인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다.
7월말 현재 연금기금 25조원중 재정투융자 특별회계에 예탁된 기금은 무려 16조원으로 전체기금의 66%에 이른다. 공공부문의 이자율이 시중금리보다연 1.5∼4.2%나 싸기 때문에 올 이자손실 역시 수천억원을 넘는다. 국민연금을 현상태로 운용할 경우 2025년에는 재정수지가 적자로 돌아서고 2033년에는 기금이 완전 바닥이 난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앞으로 보험료는 많이 걷고 내줄 돈은 줄이면서 지급시점을 크게 늦추는 방향으로 국민연금제도 개편을 추진중이다. 국민연금의 예고된 재정파탄이 기금운용의 잘못 탓이 큰 데도 모든 책임과 부담을 국민에게 고스란히 떠넘기겠다는 발상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더이상 국민을 위한 연금일 수 없다.
정부는 근로자와 농어민들이 노후를 위해 매달 박봉에서 얼마씩 떼어내 어렵게 모은 돈을 지금처럼 싼 이자로 더이상 멋대로 가져다 써서는 안된다. 낮은 이자율도 문제지만 빌려간 돈이 엄청나게 불어난다면 원리금을 갚지 못할 상황이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국민부담을 전제로 한 연금제도 개편에 앞서 기금의 합리적인 운용방안부터 내놓아야 한다. 우선 정부가 빌려 쓴 기금의 내용을 낱낱이 공개하고 공공자금으로의 강제예탁을 규정한 공공자금관리기금법의 독소조항을 폐지해야 한다. 또한 연금제도 개편방향은 재정수지 보전차원이 아니라 국민연금 본래의 목적에 충실하도록 가닥을 잡는 것이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