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광장]식량찾아 北으로… 北으로…

  • 입력 1997년 9월 11일 20시 43분


한국에선 추석을 앞두고 남으로의 귀성 대이동이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반대로 「북으로 북으로」의 이동이 계속되고 있다. 중국 접경지역에만 가면 양식을 구할 수 있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너도 나도 북쪽으로만 몰리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교통수단. 자동차가 드문 만큼 대개 열차를 타야 하는데 열차타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얘기다. 『발디딜 틈없이 들어찬 인파를 밀어붙일 수 있는 힘, 남들 앞에서 용변을 볼 수 있을 정도의 뻔뻔함. 아무거나 먹어도 별탈 없는 위장』 요즘 북한주민들 사이에 나도는 「열차타기의 기본조건」이다. 얼마나 열차타기가 어려우면 이런 풍자가 나돌까. 중국 지린성(吉林省) 투먼(圖們)에서 활동하는 선교사 K씨는 식량을 구하기 위해 중국에 온 원산의 한 대학교수로부터 들은 얘기를 이렇게 전했다. 『북한에서 열차 타기는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렵다. 대개 부정기적으로 운행되고 사람이 모두 타야 떠나기 때문에 기차를 타려면 아예 며칠동안 역에서 먹고 자면서 기다려야 한다. 식량을 구하기 위해 돌아다니는 사람들로 기차는 늘 초만원이다. 지붕위는 물론 화장실, 의자 밑까지 사람들이 들어차 일단 타면 자기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다. 나이 든 아주머니나 남자들은 앉은 자리에서 용변을 해결하지만 처녀들은 기차가 정차할 때까지 참고 있어야 할 형편이다. 기차에 유리창이 없어 이따금 차창 밖으로 엉덩이를 내놓고 용변을 보는 진풍경도 벌어진다. 연료가 부족해 예전같으면 8시간이 걸리던 원산발 혜산행 열차를 8일이나 걸려 타고 왔다』 『역에서 사흘을 굶으면서 기다리다보니 막상 기차가 도착했을 때는 사람들을 밀치고 탈 기운이 없었다.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지붕에서 어떤 청년이 손을 내밀어 끌어당겨 줬다. 지붕위에도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사흘 뒤 기차가 굽이를 도는데 같이 앉아있던 그 청년이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아무 것도 먹지못해 기진한 것이다. 나도 기차를 기다리며 사흘, 기차를 타고 사흘, 꼬박 엿새를 굶었다』 북한의 기차역은 늘 사람들로 붐빈다. 직장과 기업소도 절반은 쉬고 집에 가봤자 먹을 것도 없어 사람들은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갖고 역으로 모여든다. 중국 선양(瀋陽) S교회의 O목사는 최근 평양을 방문한 미국적 한인목사들로부터 『평양역에서도 수백여명이 주저앉아 있거나 누워있는 것을 봤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청진에서 탈북, 중국에 머물고 있는 한 북한 의사는 자신의 주요 업무가 아침마다 역에 나가 밤사이에 죽은 사람들의 시신을 처리하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식량난이 가져온 북한 사회의 변화는 하나둘이 아니다. 유랑민들이 워낙 많다보니 회령 무산 신의주 등 국경 도시 주변에는 수십명에서 수백명 규모의 부랑자수용소가 생겨났다. 집을 나와 떠도는 청소년이 늘어나 이들을 「꽃제비」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제일 심각한 문제는 예의 염치도 모를 정도로 사람들의 심성이 메마르고 거칠어진 점이라고 접경지역에서 탈북자들을 돕는 조선족 선교사들은 입을 모았다. 〈단둥〓김세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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