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앞둔 官街,「몸조심」바람…줄대기-정보보고 사라져

  • 입력 1997년 9월 20일 20시 26분


대통령 선거를 치를 때마다 중립성을 놓고 시비를 낳아온 공무원사회가 3개월이 채 남지 않은 올 연말 대선을 앞두고는 과거와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92년 부산 초원복집사건이 보여주듯 종전까지는 은밀하게 여당 후보를 지원해야 한다는 「부담」이 공무원사회를 지배해온 것이 사실이나 이번에는 최대한 몸조심을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확연하다. 이는 20일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야당후보가 여당후보를 앞서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데다 아직까지는 어느 당의 후보가 당선될 것이라는 확신이 서지 않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에 따라 과거처럼 「누구는 절대 대통령이 돼서는 안된다」는 식의 자기 의견을 주위사람들에게 강요하거나 대선 후보가 주최하는 모임에 빠지지 않고 얼굴을 내미는 공무원들의 모습도 보기 어려워졌다. 이같은 현상은 누가 대권을 잡느냐에 따라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고위공직자들 사이에서 특히 심하다. 총무처 관계자에 따르면 대통령이 직 간접으로 임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고위공직자는 정부투자기관의 임원을 포함해 2만4천명 안팎. 이들 고위공직자는 부하 직원들에게 대선에 관해 오해를 살 수 있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 말 것을 수시로 주지시키는 등 「집안단속」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달라진 분위기를 대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곳은 사정기관인 검찰과 경찰. 매번 선거와 관련, 편파수사 시비로 공격을 받아왔던 검찰과 경찰은 이번 대선을 앞두고는 과거와 달리 야당의 오해를 살 수 있는 대선관련 정보수집을 중단하도록 직원들에게 엄명을 내렸다. 중앙부처의 경우에도 과거처럼 특정 대선후보와의 인연을 강조하며 노골적으로 특정후보에게 지지를 나타내는 모습을 아직은 찾아보기 힘든 상태다. 중앙부처의 한 국장은 『92년 선거 때만 해도 여당후보의 당선이 몇달전부터 확실시됨에 따라 모 부처의 차관이 여당선거 캠프에 직접 참여했고 많은 고위공무원들이 주요공약 결정에 직 간접적으로 관여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지금도 이런 행태가 어느 정도는 있겠지만 솔직히 누가 당선될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특정후보를 드러내놓고 지지하는 분위기는 92년과 비교해볼 때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부처의 한 과장은 『92년에는 일부 국장급 이상 간부들이 여당캠프에 얼굴을 내밀고 중요한 정책사항을 미리 알려주는 일이 비일비재했다』며 『그러나 지금은 고위공무원들이 줄을 서고 싶어도 못서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92년 대선 때까지만해도 고위공무원들이 특정후보가 참가하는 모임에 얼굴을 비추기 위해애를 썼으나지금은 개인적인 사유를 들어 모임 참가를 오히려 피하고 있다. 중앙부처의 한 국장은 『공무원들은 보수적이며 대세를 따르게 마련인데 이번 선거는 아직 춘추전국시대 양상이어서 주시만 하고 있다』며 『최근 대학 동문회로부터 후보 추대와 관련한 모임에 초청받았지만 나가지 않았다』고 전했다. 또 다른 중앙부처 국장은 『92년 대선 때는 사적인 술자리에서 대선후보들을 거명하며 누구는 대통령에 당선돼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공무원들이 상당수 있었으나 지금은 사정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나 자신부터 술자리에서 친구들이 대선에 관한 질문을 하면 언론을 통해 알려진 대로 누가 여론조사에서 1등이니 당선될 가능성이 높지 않겠느냐고 말할 뿐』이라고 밝혔다. 공무원사회의 관망적인 입장은 일반 정책수행 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나 선거를 앞두고 선심성 정책을 마구 내놓던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여당후보를 지원하는 것처럼 오해를 살 만한 정책은 실행을 주저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국장은 『예산집행이나 민원관련 부서의 경우 예전에는 상부에서 여당후보에게 유리한 사업을 우선적으로 시행하도록 지시하기도 했으나 지금은 이미 계획된 사업도 오해를 우려해 시행을 미루고 있을 정도』라고 귀띔했다. 이같은 몸사리기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낙하산 인사로 곤욕을 치르는 정부투자기관일수록 더욱 심해 이들 기관의 임원들은 의도적으로 대선에 무관심을 나타내며 각 후보에게서 오해를 받지 않도록 신경을 쓰고 있다. 고위 공무원들의 몸조심 분위기와 달리 하위직 공무원들은 상대적으로 대선 자체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분위기. 노동부의 한 사무관은 『지방자치제 실시를 통해 보듯이 야당후보가 당선된다해서 공무원의 신분이 달라질 것은 없지 않으냐』며 『따라서 여당이나 야당 후보 중 누가 되느냐에 특별히 큰 관심은 없다』고 말했다. 고려대 이필상(李弼商)교수는 『이번에도 92년처럼 확실한 후보가 있다면 고위 공직자들의 줄서기는 여전했을 것』이라며 『겉으로는 중립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누구에게 줄을 서야 할지 몰라 엎드려 있는 보신주의와 출세주의의 또 다른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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