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치상황은 참으로 복잡하고 어지럽다.
보수대연합 대통합론 DJP연합 내각제개헌론에 대선연기론까지 나도니 뭐가 뭔지 모를 지경이다. 정치에 몸담고 있는 사람마저 이토록 어지러운데 국민들이야 오죽하랴.
정파마다 내세우는 주의주장의 진의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기고 보자는 저의가 바탕에 깔려 있다는 사실이다. 원칙이란 온데간데 없고 오로지 이해관계만을 따질 뿐이다.
어쩌다 우리네 정치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왜 선거때면 이렇게들 뒤흔들려 이합집산을 일삼는가.
주된 이유는 우리 정당들 사이에 차별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념의 차이는 그만두고 의식이나 체질의 차이마저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차별성이 있다면 각 정당이 근거하고 있는 지역이 다르다는 사실 뿐이다.
우리 정당들이 지역성 이외의 차별성을 잃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90년 1월의 이른바 「3당합당」이었다. 의식이나 체질이 달랐던 민정당 공화당 통일민주당이 현실적인 이해를 좇아 합친 것은 타협이 아닌 야합의 산물이었다.
통합이든 야합이든 그 결과로 문민정부가 들어섰다. 결과에만 치중하는 정치윤리로 보면 어쨌든 성공사례로 기록된 셈이다. 역설적인 얘기일지 모르지만 만약 3당합당세력이 92년 대선에서 승리하지 못했더라면 그러한 잘못이 되풀이되지는 않을 것이다.
대선을 앞둔 지금 3당합당의 선례는 승리에 집착하는 정당들에 승리의 첩경을 제시해주는 기막힌 모범답안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 같다. 3당합당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았던 제1야당이 지난날 타도의 대상으로 삼았던 군정「본당」과 손잡으려 한다.
여당 후보 역시 참신함과 대쪽이미지를 상실해버린 탓인지 보수대연합이니 대통합이니 하는 논리로 과거의 수구세력을 끌어들이려 기를 쓴다.
이들이 연대의 미끼로 쓰는 것이 내각제 개헌이다. 87년 국민들의 피땀으로 쟁취한 직선제헌법을 그렇게 쉽게 개정할 수 있다고 본다면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던 사람들이 내각제만 되면 만사가 해결될 것으로 여긴다면 꼴불견이 아닌가.
더욱이 모든 정치세력들이 보수를 자처하면서 개혁하자는 소리는 시든지 오래다. 과연 우리네 정치문화에서 보수해 나갈만한 소중한 가치가 얼마나 있는지 묻고 싶다. 수십년동안 누려온 기득권과 영화를 보수적 가치로 혼동하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정당은 정권획득이 목적이나 나름대로의 이념과 정책을 통해 정권을 획득하려 해야 한다. 「시경」에 「어린 쥐도 나름대로 원칙이 있다」는 구절이 있다. 이 복잡한 시대에 원칙이 밥먹여주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최소한의 원칙은 지켜야 한다. 그래야 사회에 질서가 잡히고 윤리가 바로 선다.
후대에게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가르쳐줄 수 있는 기준이라도 세웠으면 한다. 난마처럼 뒤엉킨 정치판에 한가닥 실마리라도 찾아졌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장을병<국회의원·전성균관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