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국당이 14일 국회 법사위의 대검찰청 국정감사를 통해 제기한 김대중(金大中)국민회의총재 친인척 및 측근인사들의 비자금 의혹은 우선 사실여부와 관계없이 여러가지 문제를 내포한다.
우선 신한국당 주장의 사실여부와는 별개로 어떻게 그처럼 방대한 정보수집을 할 수 있었느냐가 문제다. 이는 상식적으로 금융감독기관과 과거 각종 권력형 비자금 수사를 벌였던 검찰 국세청 등 국가 공권력의 개입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재정명령은 「금융거래정보를 알게 된 자는 타인에게 정보를 제공 누설하거나 목적외 용도로 이용해서는 안되며 누구든지 정보를 알게 된 자에게 정보제공을 요구해서도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고 위반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또 적법한 권한 없이 다른 사람의 계좌를 추적 조사하거나 그 결과를 공개하는 것은 사생활 침해로 민사상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지배적 견해다. 따라서 신한국당은 물론 관련 국가기관도 「정치적 목적」을 위해 실정법을 뛰어넘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이같은 자료를 김대중총재에 대해 검찰이 수사를 벌이도록 하는 「압박용」으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검찰까지 이른바 「더러운 정쟁(政爭)」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는 논란이 벌어지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이밖에도 사인(私人)의 금융거래는 법적으로 비밀보호를 받고 있는데도 「김총재의 처남의 아들의 부인의 언니」의 계좌까지 공개할 수 있었느냐도 불법 논란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아무튼 신한국당은 이날 발표한 김총재 비자금 의혹의 초점을 축재(蓄財)여부에 맞추고 있다. 그에 따라 김총재에 대한 도덕적 비난의 강도뿐만 아니라 사법처리 여부도 좌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총재가 87년부터 97년까지 10년 동안 친인척 및 측근 40명의 명의로 19개 금융기관의 4백3개 계좌에 4백15억원의 비자금을 분산 은닉했다는 신한국당의 주장은 상당히 구체적이다. 신한국당은 계좌번호와 입금액은 물론 일부 입금경로와 사용처까지 공개했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이 「입금액」 기준이기 때문에 계좌를 이리저리 옮기는 과정에서의 중복입금을 빼면 실제 자금총액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은 또다른 문제점이다. 신한국당의 한 의원은 「노름판 판돈」 계산식이라고 지적했다.
신한국당은 또 김총재 친인척 및 측근들의 축재를 부각시키기 위해 별도로 김총재 아들 3형제의 「재산현황」을 공개했다. 이중 대부분은 본인 부인 처가명의의 금융자산으로 합계가 1백43억4천3백만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입출금액 기준이다. 신한국당이 실제 보유 금융자산이 아니라 입출금액을 공개한 것은 액수를 부풀리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신한국당이 공개한 김총재 친인척 및 측근 40여명의 계좌에서 입출금된 모든 돈을 김총재의 비자금이라고 보는데도 적잖은 문제가 따른다.
다만 신한국당은 몇가지 사례를 들어 김총재가 93년 정계은퇴 후에도 기업에서 받은 자금의 일부를 친인척 및 측근 명의의 계좌를 통해 관리해왔다고 주장한 대목은, 사실일 경우 김총재로서는 부담이 될 수 있다. 김총재가 기업 등으로부터 받은 자금의 성격이 어떻든 그런 식으로 관리해 왔다면 돈세탁과 자금은닉 의혹을 떨쳐버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임채청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