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21일 「DJ(김대중·金大中 국민회의총재) 비자금」 수사를 대선 이후로 연기키로 결정하자 청와대 관계자들은 입을 맞춘 듯 「검찰의 독자적인 판단」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비자금정국」에 대한 청와대측 기류는 이미 「수사불가론」 쪽으로 상당히 기울어 있었다.
실제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은 비자금정국과 관련, 핵심관계자들에게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이란 의사를 간접적으로 내비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핵심관계자들이 비자금사건 직후 『김대통령은 누구보다도 공작정치에 반대해온 사람』이라는 반응을 보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날 검찰의 수사연기 발표 직전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가 김대통령의 공명선거의지를 강조하면서 『관권개입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강조한 대목도 시사적이다.
결국 대선전에 검찰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경우 검찰의 의도와 관계없이 관권개입 공방을 빚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청와대의 판단이었고 검찰의 수사연기 결정도 이같은 기류가 전달된 결과라는 게 청와대안팎의 지배적인 해석이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검찰의 수사연기 결정에는 「비자금수사가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상황을 수습불능의 파국으로 몰아넣을지 모른다」는 걱정도 반영돼있다고 지적한다. 비자금정국 속에서 신한국당의 「무차별적」 폭로에 대해 가장 불만을 표시했던 곳이 바로 경제수석실이었다는 점도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한다.
이런 점에서 홍사덕(洪思德)정무제1장관이 지난 15일 공선협세미나에서 비자금문제를 『국민의 평결(評決)에 맡겨야 한다』며 검찰 수사에 반대의사를 밝힌 것은 「예고탄」적인 성격을 가진 것이었다는 게 청와대관계자들의 지적이다. 당시 홍장관의 발언에 대해 여권은 강하게 반발했지만 청와대 일각에서는 김대통령과의 「교감(交感)설」을 지적하는 견해가 적지 않았다.
청와대측은 수사연기 결정을 「이회창(李會昌)신한국당총재 흔들기」로 연결시키려는 시각에 대해서는 단호히 부정한다. 그러나 비자금파문이 이총재측의 「자충수」였다는 대목에 대해서는 부인하지 않는 분위기다.
〈이동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