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와 러시아연방고려인협회가 공동주최한 러시아 고려인 강제이주 6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고 돌아오면서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러시아 동포들의 피맺힌 고난의 역사를 증언을 통해 들으면서 일행은 누구 할 것 없이 일제침략의 만행과 스탈린 독재체제의 암울한 시대를 떠올리며 회상에 잠겨보았다.
다행스러운 것은 시베리아 곳곳으로 또는 사할린이나 우즈베크 카자흐 등 중앙아시아로 옮겨간 뒤 오늘까지 꿋꿋하게 살아남아 건강하고 활달한 고려인으로 탈바꿈했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보면 고난의 역사를 영광의 역사로 바꾸었고 불행의 조건을 행복의 터전으로 삼았으니 전화위복인 셈이다.
기왕 러시아 전역에 뿌리를 내린 동포들이 다시 연해주로 집단적으로 이동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남북한을 합친 것보다 광활한 옥토를 그냥 황무지로 방치하기보다는 개발해 활용한다면 한국 러시아 양국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이미 연해주에는 남북한 사람, 중앙아시아 사할린 등지의 동포, 중국 만주에서 흘러들어온 사람, 심지어 미국 등지에서 싫증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자발적인 민족의 대이동, 엑소더스가 이뤄지고 있다.
따지고 보면 모두 남북통일을 말하지만 준비는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해방 전보다 크게 늘어난 인구와 주거 교통 산업시설, 농경지문제 등이 좁은 한반도에서 해결될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기술과 자본은 한국이 부담하고 노동력은 북한 중국 러시아 동포들이 맡는다면 일석삼조의 이익을 낼 뿐 아니라 남북대화의 과제와 민족생존 문제, 정치 경제난이 타결될 것이다. 6공 정부가 구소련에 5억달러 차관을 주었을 때 연해주를 50년이나 1백년이상 사용하는 것을 전제로 했다면 민족통합의 대복전(大福田)이 되었을 것이나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지금 어느 후보도 부국강병의 현실정치만 내세울 뿐 한민족공동체라는 민족과 세계평화의 숭고한 이념을 말하는 이가 없어 유감이다. 참으로 위대한 지도자라면 눈앞의 이익인 정권쟁취를 위해 싸울 것이 아니라 먼 안목으로 내다보고 국가와 민족, 세계를 통틀어 큰 이익을 줄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헤아리고 실천해야 한다.
정권을 잡는 일보다 오랜 식민지배 잔재와 비민주정치의 억압적 굴레에서 벗어나고 죽음의 길인 분단의 족쇄를 풀어 국가 민족 세계가 다 함께 사는 일이 더 중요하다.
윤소암<동북아불교문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