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구칼럼/새대통령에 바란다]믿어야 따른다

  • 입력 1997년 12월 20일 20시 03분


김대중(金大中·DJ) 대통령당선자는 이제 한 개인이 아니다. 더 이상 야당 당수가 아니다. 정치에 입문한지 43년, 그 고난의 역정만큼이나 승리의 감회는 남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인고(忍苦)의 세월은 오늘을 위한 준비단계에 불과하다. 국민의 지지를 업고 더 큰 승리로 승화시켜 나가야 한다. 그러자면 열린 마음으로 다시 한번 겸허하게 자신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이 김당선자가 해야할 첫번째 일이다. ▼ 국가경영 기본은 믿음 ▼ 「DJ」처럼 애증(愛憎)이 심하게 엇갈려 있는 정치인도 드물 것이다. 유권자들은 반세기만에 처음으로 여야를 뒤바꿔놓으면서 그런 그를 국가의 지도자로 뽑았다. 그 선택에 담긴 국민의 깊은 뜻을 김당선자는 헤아려야 한다. 민주화투쟁때의 집념과 불굴의 투지로 오늘의 이 위기를 거뜬히 극복하고 국가를 반석 위에 다시 올려 놓는다면 그는 역사에 위업을 남기는 거목(巨木)으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국난의 성격, 위기의 본질부터 바로 보아야 한다. 한마디로 국가지도자의 리더십 부재, 신뢰성 상실이 이 엄청난 혼란을 몰아왔다. 김영삼(金泳三·YS)대통령은 취임초 90%를 오르내리는 인기를 누릴 때만 해도 국민적 존경과 사랑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좋은 분위기를 국민통합과 국가발전의 에너지로 결집시키지 못했다. 「YS의 비극」은 거기서부터 잉태하기 시작했다. 김당선자는 전임자의 실패에서 배워야 한다. 정치의 기본, 국가경영의 기본은 믿음이다. 국민은 지도자를 믿을 수 있을 때 존경하고 따른다. 바로 그 믿고 따르게 하는 힘이 리더십이다. 김대통령은 이 평범한 진리를 실천하지 못했다. 국민적 합의에 바탕하지 않은 독선 독주와 그로 인한 국민의 소외감은 불신과 냉소로 이어졌고 급기야 외국인들까지 한국정부를 못믿는 심각한 국면을 몰아왔다. 지도자에 대한 기대와 신뢰가 무너지면 국민이 등을 돌리고 국제사회에서도 비아냥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다. 부도 직전의 나라살림을 물려받는 김당선자는 당장 신뢰성의 위기, 국민통합의 위기부터 추스르는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 국난극복에 절대로 필요한 국민적 동참과 고통분담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열정과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한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하고 또 지킨다는 믿음을 심어주어야 한다. 국민을 믿게 하려면 국정의 공정성 공개성 투명성이 생명이다. 불투명한 밀실행정 측근정치가 불신의 온상이었다. 국정의 신뢰를 얻으려면 정책의 효율성 적기성도 중요하지만 사람을 잘 써야 한다. 널리 인재를 찾아 적재적소에 신중히 골라 쓰되 한번 쓰게 되면 믿고 맡겨야 한다. 같이 고생한 사람들에 대한 인간적 의리는 좋으나 마음에 걸린다고 무슨 전리품처럼 한자리씩 주다가는 전임자처럼 일을 그르치기 쉽다. 선거에 이기기 위한 용인(用人)과 집권기 인사포석은 같을 수 없다. 이른바 가신(家臣)들도 이제 큰 일을 성사시킨 이상 초야에 묻힌다는 각오로 보스를 편하게 해주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 「初心」 잊지 말아야 ▼ 김당선자는 선거기간중 가는 곳마다 『저에게 기회를 주십시오. 해낼 수 있습니다』고 지지를 호소했다. 임기가 끝나는 날까지 그때의 그 절절하고도 진솔한 심정을 잊지 말아야 한다. 거품같은 인기에 연연하거나 자칫 자만에 빠지면 어느 순간 「자기」를 놓칠 수가 있다. 그것이 권력의 속성이자 함정이다. 한 나라의 지도자는 물러날 때의 모습으로 최종 평가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 바란다. 남중구<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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