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곳에선]이재호/美國이 보는 金당선자

  • 입력 1997년 12월 20일 20시 03분


한국에서 대통령 선거가 있던 날 미국 언론의 관심도 「누가 될까」였다. 김대중(金大中·DJ)후보가 당선되자 미소를 머금었다. 주요 신문의 기사에서 그 답을 읽을 수 있다. 뉴욕 타임스지는 19일 그를 가리켜 「전설적인 민주화 운동가」라고 불렀고 워싱턴 포스트지는 「한 세대에 걸친 민주화운동의 기수」라고 썼다. 월스트리트 저널지는 그의 대선 승리를 「남아공의 만델라와 폴란드의 바웬사가 대통령이 됐던 것처럼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정치적 반전(反轉)의 하나」라고 규정했다. ▼민주화 역정에 호의적▼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에 대한 이같은 표현 속에는 그가 걸어온 민주화 역정에 대한 미국인들의 존경과 호의가 숨어있다. 그는 미국이 지향하는 주된 가치 중 하나인 「정치적 민주화」를 앞당긴 인물이 됐기 때문이다. 그가 겪었던 가택연금과 피랍, 사형을 선고받았던 고통은 적어도 이날 하루만은 민주화의 자랑스런 흔적이 되어 미국인들의 가슴에 되새겨지는 듯했다.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서 김당선자와 미국의 관계는 특수했다. 김당선자는 본인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지난 30여년간 미국이 한국의 군사독재를 견제하고 민주화를 부추기기 위해 활용해 온 주된 수단중 하나였다. 『DJ가 있고, DJ 뒤에 미국이 있다』는 암시만으로도 미국은 박정희(朴正熙) 전두환(全斗煥)전대통령의 전횡에 제동을 걸 수 있었다. 권위주의를 견제하고 민주주의를 진전시키기 위해 미국이 의지하고 협조했던 인물이 청와대의 주인이 됐다는 사실은 미국이 추구하는 정치적 자유의 확대 과정을 한 편의 드라마처럼 보여주는 것으로 미국인은 생각하고 있다. 미국은 그러나 이제 김당선자에게 새로운 것을 요구하고 있다. 「경제의 민주화」다. 바꿔 말하면 시장경제의 확립이고 경제의 투명성 제고다. 정치적 민주화에 걸맞게 경제의 민주화도 이루라는 주문이다. 재벌 정치 금융의 3자 유착에서 벗어나 자유와 공정이 모든 거래를 규율하는 경제의 새로운 틀을 만들라는 뜻이다. ▼「경제 투명성」큰 기대▼ 미국의 이런 주문은 구체적으로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지원에 따른 제반 조건들을 충실히 이행하라」는 요구로 나타나고 있다. 백악관의 논평은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김당선자에 대한 백악관 대변인의 최초 논평이 IMF와의 약속이행을 상기한 것은 이 대목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 어떤가를 명백히 보여주는 것이다. 미국은 한 걸음 더 나가 「경제의 민주화」를 이뤄낼 김당선자의 능력과 의지에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노동자와 소외계층의 지지를 받는 그가 과연 대량해고가 뒤따를 구조조정을 할 수 있겠는가, 재벌을 해체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물음들이 그것이다. 그의 경제공약에 「실명제 유보」 「기업에 대한 대출금 상환 2년 유보」가 포함돼 있음을 지적하고 이같은 공약들은 경제의 민주화와 투명화, 시장경제에 반대로 가는 것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투명성을 제고하고 시장 스스로가 기능하도록 놔둬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런 우려와 지적들은 결국 「정치적 민주화」로부터 「경제적 민주화」로의 신속한 이행을 주문하고 있다. 그리고 그 첫 시험을 미국은 IMF의 조건 이행 여부에서 찾고 있다. 미국 정부의 한 관계자의 말은 대단히 시사적이다. 『김영삼(金泳三)대통령처럼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일을 하려고 하지말라. IMF위기극복 한가지만 잘해도 가히 명군(名君)이다』 이재호(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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