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빈 강정’으로 확인된 한국경제. 그 이면에는 부실을 숨겨온 엉터리 기업회계 관행이 있다. 외국언론은 “계열사 부실여부는 재벌총수만이 안다”고 비아냥거린다. 실제로 그랬다.잘못된 회계보고서는 부실(不實)검문을 피하는 가짜증명서가 돼 과다차입을 가능케 했고 한국기업병(病)을 키웠다. 국제통화기금(IMF)시대 기업 구조조정은 성적을 제대로 매기는 데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기업 자체로도 엄격한 취사(取捨)의 기준이 되지만 대외적으로는 국제 신뢰도를 회복하는 첩경이 된다. 엉터리 기업회계의 실상과 그 파장을 입체점검한다.》
공인회계사들이 평소 안면있는 친지 등이 주식투자에 손댈 때 빠뜨리지 않는 충고가 있다. 투자기업 감사보고서의 ‘적정(適正)’의견에 속지 말라는 것이다.
‘적정’은 현행 회계기준에 맞게 회계장부가 작성됐음을 뜻하는 것이지 결코 회사 재정이 건전하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얘기다.
회계법인이 난립한 우리 회계감사 시장에서 고객인 기업은 맘대로 감사기관을 고를 수 있다.
C회계법인 관계자는 “고객들의 입장을 존중하면서도 법적 책임을 피할 수 있도록, 투자가들이 좀체 보지 않는 주석(註釋)란에 주요 재무변동 사항을 돌려서 표현하는 게 우리업계의 관행”이라고 털어놨다. 지난해 6월 모그룹의 인수합병 담당 K이사는 부도위기에 몰린 대농그룹으로부터 주요 회계장부를 건네받았다. ㈜대농 미도파 등의 인수요청을 받은 며칠 뒤의 일.
그러나 K이사는 서류를 검토한지 하루만에 “없던 일로 하자”고 대농에 통보했다. “95년까지 수십억원씩 이익을 내다 96년 단번에 2천9백억원의 적자로 돌아선 ㈜대농의 회계장부를 믿을 수 없었다”는 게 그의 회고.
우리기업들의 회계장부는 국제적으로 이미 ‘엉터리’로 낙인찍혔다. 외국언론들은 “계열사중 어디가 적자이고 흑자인지는 오직 재벌총수만이 안다”고 비아냥거린다.
국내외의 따가운 비판에도 불구하고 우리기업들의 ‘편법’회계처리는 전혀 수그러들지 않는다.
전자업체 S사는 지난 12월 30일 ‘자산수명이 늘었다’며 공장설비 등 유형(有形)자산의 감가상각(減價償却)기간을 3∼5년에서 5∼10년으로 늘렸다. 상각기간이 늘어나면 올해 결산때 반영해야 할 비용이 줄어들게 돼 그만큼 이익이 부풀려진다. 이 회사는 95년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순익을 낼 때는 상각기간을 좁게 잡아 ‘절세(節稅)’했다.
H, S제지 등도 지난 연말 비슷한 이유를 들어 상각기간을 8∼10년에서 24, 25년으로 고무줄처럼 늘렸다.
감독당국의 잦은 회계규정 변경은 기업들의 편법을 부추긴다.
증권당국은 그동안 환산손을 ‘당기순익에 드러나지 않게 자본금을 줄여나가는’ 편법으로 처리하도록 허용하다 환율이 폭등하자 지난 연말엔 환산손을 몇개년(상환기간)으로 나눠 반영하도록 기준을 바꿨다.
〈박래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