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이회창 한나라당 명예총재

  • 입력 1998년 1월 5일 20시 48분


5일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에 출근한 이회창(李會昌)명예총재는 대통령선거 패배의 충격을 어느 정도 극복한 것처럼 보였다. 이명예총재는 “지난달 18일 저녁 개표를 지켜보다 11시쯤 잠이 들었는 데 다음날 새벽 두시에 집사람이 깨워 ‘안된 것 같다’고 말했다”며 “의외로 담담하게 받아 들였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나보다 주변에서 크게 낙담하고 울고 할 때는 마음이 아팠다. 서울과 충청권을 좀더 다녔더라면…”이라고 말해 아쉬움의 일단을 비쳤다. 이명예총재는 “깨끗하게 선거를 치러 큰 차로 대패했다면 정치 변화를 포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당 후보로서 1천만표 가까운 표를 얻어 확신이 생겼다”며 정치적 재기의욕을 불태웠다. “고된 선거운동의 강행군속에서도 군중의 박수를 받으면 힘이 솟았다”는 그의 말에는 이미 ‘프로 정치인 이회창’의 냄새가 배어 있었다. 이명예총재는 한나라당의 향후 행로와 관련, “우리 당은 원래 이질적인 정파들이 모인 만큼 계파나 계보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며 “다만 계파간 갈등이 심해질 경우 자칫 당의 존속까지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당의 앞길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어 그는 “3월의 재 보궐선거와 5월의 지방선거 때 유세에 참여할 것이냐”는 질문에 “당인으로서 당에 기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답했다. 이런 얘기들로 볼 때 3월의 전당대회와 보궐선거, 5월의 지방선거 등을 앞두고 ‘이회창’을 찾는 목소리가 커질 때 다시 정치 전면에 컴백하겠다는 것이 그의 속내인 듯하다. 그는 김대중(金大中)차기대통령의 최근 활동과 관련, “너무 경제회생에만 치중해 국정의 기본방향을 세우는 데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나라를 위하는 일에 여야가 있을 수 없고 필요한 일이 있다면 (김차기대통령과) 만나서 얘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영삼(金泳三)대통령과의 관계개선 문제에 대해서는 “청와대에서 7일저녁 전직 총리 모임에 참석하라고 초청했으나 선약이 있어서 갈 수 없다”고 말해 응어리가 풀어지지 않았음을 드러냈다. 〈박제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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