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년 10월 10일. 한국 정가(政街)에 일본발(發) 급전(急電) 하나가 날아들었다.
“한국의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본지 특별인터뷰에서 밝힌 ‘국민이 놀랄 정도의 세대교체를 이룰 정치인’은 올해 46세의 이인제(李仁濟)경기지사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지사는 김대통령이 소장파 정치인 중에서 가장 신뢰하는 인물이다.”
급전은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의 해설기사였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 정가, 특히 여권은 김대통령의 이른바 ‘니혼게이자이 발언’으로 상당히 긴장하고 있던 터였다.
김대통령은 바로 전날인 9일 니혼게이자이와 인터뷰를 가진 자리에서 후계구도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한가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국민이 놀랄 만한 세대교체를 실현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통령이 차기 대선후보의 조건에 대해 이처럼 구체적인 언급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이인제 신드롬’의 신호탄이었다.
▼ 『5년뒤 대통령기준 다를것』
물론 김대통령은 며칠 뒤 “누구를 염두에 두고 한 얘기는 아니다”라고 ‘대권논의’의 조기과열을 경계하기는 했다.
그러나 김대통령 발언의 ‘뿌리’는 상당히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92년 대선에서 승리한 김영삼당선자가 조각(組閣)인선에 막바지 박차를 가하고 있던 93년 2월초.
인선실무를 담당했던 전병민(田炳旼·청와대 정책수석 내정자)씨의 ‘동숭동팀’(취임 후 개혁프로그램 작업팀)은 김당선자에게 매우 이례적인 내용의 ‘서울시장 검토 보고’를 했다. 물론 구두(口頭)보고였다.
당시 작업에 관여했던 ‘동숭동팀’ 실무자의 ‘메모’를 토대로 재구성해 본 구두보고는 다음과 같다.
“노태우(盧泰愚)대통령의 집권으로 권위주의 시대가 마감됐다면 총재님의 당선으로 민주화 시대의 인물이 집권하는 것도 마감되는 것입니다.
총재님의 임기가 끝나는 5년 후에는 국가지도자를 뽑는 기준도 지금과는 다를 것입니다.
미국의 경우 주지사로서 지방경영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은 인물들이 대통령 선거에 도전해 당선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만큼 지도자를 선출할 때 국가경영능력에 많은 비중을 둔다는 뜻일 겁니다. 우리도 2년 후에는 지자제를 합니다.
우리에게도 미국과 같은 경우가 있을 수 있고, 그것은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반드시 국가경영의 검증을 거친 사람이 지도자가 되는 시대로 접어들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이번에 임명하는 서울시장은 과거와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앞으로 개혁을 통해 행정구역이 어떻게 바뀌든 마지막 관선 서울시장은 어느 지방의 단체장 선거에서도 프리미엄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5년 후와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을 감안해서 사람을 찾아보겠습니다.”
김대통령은 아무 말이 없었지만 검토 보고의 의미를 되새기는 표정이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전병민씨는 ‘이인제 서울시장’안(案)을 올렸다.
역시 실무자의 메모를 기초로 재구성한 당시 상황.
전병민씨〓(이인제의원 이력서와 검토의견서를 건넨 뒤) 저는 이 사람에 대해 잘 모릅니다. 한번도 만나 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공개된 이력으로만 본다면 나이가 젊고 출신지역도 전라도나 경상도가 아닙니다. 또 학력이나 경력도 훌륭합니다. 5공 청문회를 통해 자기 논리를 설득력있게 대중에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보였습니다. 다만 이력서를 보면 국제화시대에 부합하는 경륜이 눈에 띄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누구보다 총재님께서 잘 아실테니까 만약 서울시장에 임명하시려거든 어느 관료조직보다 방대한 서울시의 관료를 장악할 수 있는 리더십이 있는지, 또 앞으로 2년 동안 서울시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시정개혁을 할 수 있는지는 직접 판단하십시오.
▼ 『때가 덜묻고 똑똑한 사람』
김당선자〓잘 골랐어. 똑똑하지…(한참 생각하는 모습). 다른 국회의원보다는 때가 덜 묻은 사람이야.
전씨는 김당선자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고는 한마디 덧붙였다.
“집권하시기도 전에 차기문제를 말씀드려 죄송하지만 관선 서울시장을 제대로 해내면 2년 뒤 지방선거 때 민선 서울시장 후보로 내보낼 수 있고 거기서도 성공하면 5년 후를 대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인제 서울시장’안은 며칠 뒤 폐기되고 말았다.
이의원을 서울시장에 임명하면 의원직을 그만둬야 하고, 그렇게 되면 보궐선거를 치르게 된다는 게 김당선자의 우려였다. “취임 초부터 수도권에서 선거를 치르게 되면 새 정부의 분위기가 흐트러질 수 있다”는 것이 당시 김당선자의 얘기였다. 대신 노동부장관에 발탁됐다.
다시 한달 쯤 뒤인 3월초.
문민정부는 박희태(朴熺太)법무부장관 박양실(朴孃實)보사부장관 김상철(金尙哲)서울시장의 이른바 ‘조각 검증파동’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문제의 세사람이 전격 경질된 직후였다. 김대통령은 업무보고차 청와대에 들어온 이인제장관에게 “서울시장 후임자는 누구로 하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준비없이 들어온 이장관이 한참 생각하다 “이 어떻습니까”라고 건의했다. 김대통령은 그러자 자신이 원래는 ‘이인제 서울시장’을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보궐선거 때문에 김상철시장으로 바꿨다는 얘기와 함께….
이인제 국민신당 상임고문의 후일담. “사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는 아쉬웠습니다. 국가경영수업을 쌓고 싶었는데 노동부장관 자리는 그런 경영수업을 쌓는 자리가 아니지만 서울시장은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자리거든요. 하지만 나중에 성수대교가 무너지는 것을 보고는 ‘악운(惡運)이 이인제를 피해 가는구나’하는 생각을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내가 서울시장으로 있었으면 성수대교 붕괴로 (정치생명이) 끝났을 것 아닙니까.”
여하튼 비록 ‘맹아(萌芽)적 형태’이긴 하지만 김대통령이 취임하기도 전부터 ‘차세대 문제’까지 받아들일 만큼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김대통령이 취임 이후 기회있을 때마다 “(3김의) 경쟁은 끝났다”고 강조한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
세대교체에 관한 김대통령의 ‘의식의 흐름’을 세밀하게 추적할 수는 없다. 그러나 95년 3월 유럽 5개국 순방차 영국을 방문했을 때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당수(현 총리)를 만난 일도 하나의 계기로 작용했던 것 같다.
김대통령은 숙소인 클라리지호텔에서 블레어 당수를 만났다.
당시 김대통령을 수행했던 청와대비서관의 기억.
“김대통령은 머리도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젊은 사람이 들어서자 곁에 있던 비서관들에게 귓속말로 ‘누가 블레어냐’고 물었습니다. ‘저 사람이 블레어’라고 대답하자 김대통령은 놀란 듯 반기더니 나중에 ‘그래 지도자는 젊어야 해’라고 곱씹었습니다.”
당시 블레어 당수는 42세. 김대통령의 놀라움은 30분간의 환담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김대통령〓30대처럼 보입니다. 이렇게 젊은 줄 몰랐습니다.
블레어 당수〓김대통령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아침에 리전트공원에서 조깅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대통령〓(놀라움이 가시지 않는 듯 곁에 있던 취재기자들을 둘러보며) 여러분도 이렇게 세대교체가 된 것을 알겠지요.
▼ 「97대선 승부수」 건의 받아
김대통령은 그로부터 5개월 뒤 다시 ‘세대교체와 97년 대선’을 승부수로 띄워야 한다는 ‘극비 건의’를 받는다.
민자당이 그해 6월 27일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선거를 비롯해 야당에 대패한 직후인 8월 어느날, 청남대에서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김대통령은 전병민씨를 불렀다.
전씨가 김대통령 취임 직전 청와대 정책수석직에서 중도하차한 이후 처음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이기도 했다.
김대통령이 지방선거 패배후유증과 이듬해 4월에 실시될 총선대책을 묻자 전씨는 이렇게 건의했다.
“다음에 치러질 총선도 과반수 확보가 어려울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입니다. 그러나 각하에 대한 최후 평가는 대선입니다. 만약 대선에서도 패배한다면 ‘실패한 대통령’으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대선승리를 위해서는 유권자의 60% 이상이 젊은 층이라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정치권의 상식을 뛰어넘고 국민의 의표를 찌를 수 있는 후보, 또 국민에게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는 젊고 능력있는 후보를 내세워 세대교체를 선거쟁점화하는 것 외에는 어떤 방법으로도 대선승리를 장담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일본에서 깜짝 놀랄 만한 젊은 후보는 이인제지사라는 급전이 날아든 것은 그로부터 한달 반 뒤였다.
〈김창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