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정관가서 「외환책임」 목청높이자 『당황』

  • 입력 1998년 1월 26일 18시 30분


한국은행이 지난해 23차례나 외환위기를 경고했다는 감사원 자료가 26일자 동아일보를 통해 밝혀지자 청와대는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고 재정경제원은 “우리도 그런 보고는 많이 올렸다”며 책임을 비켜가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정작 한은은 상급기관의 ‘기분’을 고려한 탓인지 “사실과 다르다”며 ‘매’를 자청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감사원 자료가 ‘환란(換亂)’에 대한 여론을 악화시키는 결정적 재료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모습이었다. 다만 한은의 보고서에 대해서는 “책임을 면하기 위한 일방적 주장”이라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김영삼(金泳三)대통령도 26일 오전 핵심관계자들에게 “지난해 11월초 공식보고를 받기 전까지는 그런 보고를 받은 바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는 후문이다. 외환위기에 관한 청와대의 기본입장은 재경원 한은 등 관련기관들이 외채규모와 외환보유실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감독체제가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 주요인이었다는 것. 이와 관련, 한 관계자는 “한은이 지난해 3월 국제통화기금(IMF)차입 등 비상대책 강구를 건의했다 하더라도 이는 최악의 경우를 예상한 많은 대안중 하나였을 뿐”이라며 “이를 근거로 IMF지원요청을 건의했다고 말하는 것은 책임회피”라고 반박했다. ○…재경원은 이날 재경원과 국책연구소도 한은보고서와 유사한 보고서를 수없이 올렸다고 주장했다. 재경원 관계자는 “우리는 그동안 경제장관회의에 제출한 자료나 장관에게 보고한 자료가 모두 리스트로 작성되어 있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재경원 내부 보고자료에서 외환위기의 위험성을 경고한 사례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며 “한은이 위기상황을 보고했는데 이를 무시한 일은 없다”고 강조했다. 재경원의 또 다른 관계자는 “한은에서 경고했다는 수위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한보사태 이후 대외신인도 하락으로 인한 외환사정의 어려움은 재경원에서도 계속 제기해온 문제”라며 “다만 외환사정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정확히 판단할 수 없고 근거도 없는 상황에서 모라토리엄(대외채무지급유예)상황을 예견하고 IMF 구제금융을 제안하는 식의 경고를 할 수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재경원 관계자들은 외환문제에 관해 “담당사무관과 과장이 아니면 전혀 알 수 없었다”며 유기적인 업무협조에 문제가 있었음을 시인했다. 재경원 관계자들조차 △외환보유고가 얼마나 줄어들고 있는지 △장단기 외채구조가 어떤지 △단기외채의 상환스케줄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없었다는 것. ○…한은은 이날 “외환위기 촉발가능성을 본격 거론하고 정부에 대응책을 촉구한 것은 지난해 10월말 이후부터”라며 “IMF 긴급자금지원 요청의 시급성을 건의한 것은 지난해 11월7일”이라고 발표했다. 한은은 ‘23차례의 경고’와 관련, “매번 경고성 메시지를 전달한 것은 아니다”며 “우리가 정부에 건의했거나 보낸 자료에는 외환위기 발생 가능성을 지적한 것도 있지만 통상적인 현안 협의자료도 포함돼 있다”고 해명했다. 한은은 또 “지난해 11월10일밤 9시반경 김대통령이 이경식(李經植)총재 자택으로 전화를 걸어 위급한 외환문제를 비롯한 제반 경제문제의 대처방안을 물어왔다”며 “이총재는 이때 외환보유 사정이 어렵고 IMF긴급자금 요청이 불가피함을 건의했다”고 밝혔다. 〈이동관·윤희상·신치영기자〉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들은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지난해 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때부터 대선을 의식, 경제위기가 부각되는 일을 꺼렸을 것”이라면서 “정치논리 때문에 경제가 희생됐다”고 청와대측이 지난해 3월부터 외환위기를 알았을 개연성을 부인하지 않는 분위기다. 인수위의 한 관계자는 “김대통령이 IMF금융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참모들의 건의에도 번번이 ‘내 임기중에는 안된다’며 묵살했다는 얘기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인수위 내부에서는 “보고라인의 중간에서 보고를 묵살 또는 차단했거나 정치적 이유 등으로 외환위기 공개나 대책강구를 하지 않았다면 직무유기혐의에 의한 형사처벌도 가능할 것”이라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한나라당 관계자들은 한국은행 등이 지난해 3월이후 모두 23차례나 외환위기를 경고한 것으로 감사원 특감자료에서 나타나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반응이었다. 맹형규(孟亨奎)대변인은 이날 성명을 내고 “그동안 김대통령과 핵심 경제책임자들은 상대방에게 책임전가하기에 급급한 추한 모습을 보여왔다”면서 “감사원 특감으로 규명에 한계가 있는 부분은 경제청문회를 통해서 모든 것을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나라당측은 “나라와 국민을 파탄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원인규명에 있어서 어떠한 예외도 있을 수 없다”고 밝혀 김대통령까지 포함해 관련자들에 대한 책임추궁을 시사했다. 한편 국민신당 김충근(金忠根)대변인은 “외환위기를 보고받고도 방치한 이유 등은 명명백백히 규명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영훈·김재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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