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는 없습니다.”
93년2월25일. 국회의사당앞 광장에서 열린 대통령취임식에서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대북(對北)정책 전환을 암시하는 주목할 만한 발언을 했다.
이 표현은 사실 김일성(金日成)주석을 겨냥한 것이었다. 취임사에도 “김일성 주석에게 말합니다”란 전제가 붙어 있었다. 결국 모든 동맹국이 등을 돌려 이제 도울 나라는 우리밖에 없는 만큼 대화의 장(場)으로 나서라는 촉구의 메시지였던 것.
한완상(韓完相) 최창윤(崔昌潤) 오인환(吳隣煥) 이경재(李敬在) 김정남(金正男) 김충남(金忠男)씨가 참여, 1월초부터 가동됐던 취임사 준비위원회의 토론과정에서도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간사역할을 했던 이경재의원(당시 후보공보특보)은 “참석자 대부분이 이 취지에 동의했고 보수적 인물이었던 최창윤 후보비서실장까지도 ‘좋다’며 흔쾌히 찬성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견이 없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취임사준비에 참여했던 김충남씨의 증언.
“토론때 ‘세계는 민족의 시대를 넘어서고 있다. 동맹보다 북한을 우선시하는 태도는 부적절하다’고 이의를 제기했으나 일부 참석자로부터 ‘감옥에 가보지 않은 사람은 말할 자격이 없다’고 면박을 당했다.”
‘미국보다 북한’이란 의미로까지 확대해석됐던 이 표현은 문민정부 초기부터 ‘좌파시비’를 불러일으킨 시발점이 됐다. 특히 당시 아이디어를 낸 것으로 알려졌던 한교수와 취임사를 다듬은 김정남씨가 보수세력의 공격을 받는 구실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