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인선 안팎]『黨의견 존중』 文정무 낙점

  • 입력 1998년 2월 10일 20시 13분


김대중(金大中)차기대통령은 자신의 인선 ‘첫 작품’인 청와대 수석비서관을 결정하며 발표직전인 10일 아침까지 장고에 장고를 거듭했다. ○…김차기대통령이 가장 고심했던 자리는 정무수석. 문희상(文喜相)전의원과 이강래(李康來)국민회의총재특보를 놓고 저울질을 계속했다. 9일 밤 삼청동 안가에서 열린 심야회의 전까지만 해도 김차기대통령은 이특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그러나 기류가 반전하기 시작했다. 국민회의 김옥두(金玉斗)의원이 당의 ‘특사’로 안가를 방문, 당안팎의 여론을 전하면서 김차기대통령의 마음을 크게 흔들어 놓았다. 김중권(金重權)차기대통령비서실장이 안가를 나선 것은 밤 10시반경. 김실장은 10일 오전2시까지 모처에서 여야의원 등 20여명에게 전화로 정무수석 인선에 대한 의견을 구했고 거의 전원이 문전의원을 선호했다는 후문이다. 김실장은 10일 이른 아침 여야의원들의 의견과 이 날짜 조간신문의 관련보도를 정리해 삼청동 안가로 들어갔다. 김차기대통령은 자료를 검토한 뒤 오전8시반경 “당의 의견도 존중해야지”라며 마침내 문전의원을 정무수석으로 낙점했다. 김실장은 이 사실을 김차기대통령과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청와대회동 직전인 오전9시10분경 김용태(金瑢泰)대통령비서실장 집무실에서 문전의원에게 전화로 통보했다. 문전의원은 10일 오후 밝은 표정으로 국민회의 기자실에 들러 “오늘 제 처가 52세 생일인데 최고의 생일선물을 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정무수석과 함께 막판까지 진통을 겪었던 사회복지수석은 9일 밤 비교적 쉽게 마무리됐다. 김차기대통령은 김영삼(金泳三)정부에서 승승장구한 이근식(李根植)내무차관의 발탁에 대한 공직사회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보고를 접하고 곧 조규향(曺圭香)부산외국어대총장으로 선회했다. 이차관은 내무차관 유임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청와대 수석들에 대한 인사가 마무리되자 수석 이하 1,2급 비서관자리를 놓고 국민회의 중하위당직자들의 움직임도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특히 정무 민정 총무 홍보비서관 등 핵심자리를 노리는 상당수의 당직자들이 수석내정자들의 눈도장을 찍기 위해 여기저기 선을 대는 모습도 보여 당사는 어수선한 분위기. 당직자들이 자신이 원하는 비서관직을 맡을 수석내정자들에 대한 신상과 당내 인간관계 등을 탐문하기 위해 전화기를 붙잡고 수소문을 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한 중간당직자는 “비서관직을 원하고 있지만 수석내정자와는 일면식도 없어 답답한 심정”이라며 “수석내정자를 만나 담판을 짓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수석비서관 인선결과를 놓고 여야는 ‘합리적 인선’이라는 평가와 ‘친정체제 구축’이라는 지적이 엇갈렸다. 국민회의 정동영(鄭東泳)대변인은 논평에서 “정치색을 배제하고 기능을 중시한 바람직한 인선”이라고 평가했다. 한 당직자는 “우리당 내부와 야당을 잘 알고 있는 문희상(文喜相)의원이 정무수석이 된 것은 잘 된 일”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나라당 맹형규(孟亨奎)대변인은 “내정자들의 무게로 볼 때 김차기대통령의 극단적인 친정체제 구축의지가 표현된 것으로 본다”고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국민신당 김충근(金忠根)대변인은 “전문성과 능력이 고려된 인선”이라며 “대통령이 구국의 혜안을 갖고 국정을 수행할 수 있도록 사심없이 보필하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임채청·윤영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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