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임연철/南北 언어연구

  • 입력 1998년 2월 16일 19시 31분


▼남한의 ‘표준어’에 해당하는 말이 북한에서는 ‘문화어’다. 본래 하나였던 우리말이 분단 반세기를 넘어서며 언어생활의 기준인 단어마저 달리 써야 할 만큼 남북한 언어이질화의 골은 깊다. 특히 분단 이후 생성된 단어는 북한어사전을 뒤져보지 않거나 설명을 듣지 않으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원주필’ ‘직승기’ ‘손기척’의 경우 ‘볼펜’ ‘헬기’ ‘노크’로 번역해주지 않으면 알 길이 없다. ▼생소한 말에는 외래어에서 온 것만은 아닌 경우도 많다. 우리말이 분명한 ‘문화일’ ‘부화’ ‘해방처녀’가 ‘토요일’ ‘간통’ ‘미혼모’를 뜻한다니 통일이 돼도 언어생활에서 겪게 될 혼란은 불을 보듯 명백하다. 통일이 멀리 있지는 않겠지만 이대로 다시 반세기가 흐른다면 고문(古文)시간에‘용비어천가’배우듯통일 후 남한어 북한어 수업시간이 학교에 개설돼야 할 판이다. ▼폴란드의 바르샤바대학에 파견됐던 남북의 언어학자가 현지 학생들을 가르치던 중 ‘한국어’와 ‘조선어’가 너무 달라 혼란스럽다는 의견을 받아들여 ‘남북한 언어 비교연구’를 펴내게 됐다는 보도다. 서울대 이현복교수와 북한 혜산사범대 노길룡교수가 90년 처음 만나 7년만에 결실을 본 것이다. 최초의 남북한 학자 공동저술인데다 어휘는 물론 맞춤법 발음 표현에 이르기까지 언어 차이를 기술해 이질화의 골을 다소나마 메워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분단 50여년 동안 골이 깊어진 것이 언어만이 아님을 생각하면 이번 공동연구는 남북한 문화이질화를 메우는 하나의 시작일 뿐이다. 고고학 문화재 전통예술 등 이념을 넘어서 손쉽게 함께 연구해야 할 분야가 많다. 통일 후 한민족 후예들이 혼란을 겪지 않도록 남북의 집권자들은 학자들의 교류와 공동연구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 임연철<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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