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납치사건’을 현장에서 지휘한 윤진원(尹鎭遠·73)씨는 누구인가.
사실 그는 납치사건만 아니라면 ‘중앙정보부 해외공작 단장’이라는 직함에서 짐작할 수 있듯 대중에 알려질 수 없고 또 알려져서도 안되는 ‘공작전문요원’이었다.
그와 같이 일했던 중정 동료들은 “작고 다부진 키의 윤씨는 목숨을 걸고 사선을 넘으며 수십년간 국가를 위해 일해온 유능한 공작원이었다”며 “애국자를 정치공작에 투입하는 바람에 그는 30년 동안 쌓아온 명예를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1925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난 그는 부산공고를 졸업한 뒤 전쟁중인 50년 육군종합학교에 입교, 그해 12월 소위로 임관했다.
임관한 그는 육군첩보부대(HID)로 옮겨 일하다가 61년 중앙정보부가 창설되면서 현역 소령 신분으로 중정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육군첩보부대는 대북관련 정보나 공작을 담당해온 비밀부대. 납치사건의 윗선으로 중정차장보였던 이철희(李哲熙)씨 역시 HID출신이다. 그는 주로 대북 또는 해외공작 업무를 담당해오다가 73년 김대중납치사건을 ‘현장지휘’하게 된다. 김대중납치사건의 현장업무를 가장 정확하게 증언해줄 인물인 셈.
납치사건 이후 그는 당시 업무를 수행한 중정직원과 용금호 선원들의 비밀관리를 맡는 등 일선에서 소외된 업무를 해오다 결국 75년 준장진급에 실패했다.
중정은 75년2월 전역한 그를 1급 관리관으로 재임용했다.
당시 중정측은 윤씨에게 강원지부장을 제의했으나 그는 “국내정치는 나에게 맞지 않는다”고 거절하고 공작단 업무를 계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씨는 80년초 중앙정보부에서 은퇴한 뒤 주로 중정 동료들과 어울리면서 소일하고 있다는 것이 동료들의 설명이다. 윤씨는 현재 서울 이태원동의 빌라에서 큰아들과 살고 있으며 언론과의 인터뷰를 극력 피하고 있다.
〈특별취재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