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광표/정부의 「문화재 파괴정책」

  • 입력 1998년 2월 20일 19시 33분


우리 문화유산의 보고(寶庫)인 경주박물관이 지금의 국립에서 도립이나 시립으로 바뀐다면 과연 국제경쟁력이 있을까.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경주 부여 등 9개 지방 국립박물관을 지방자치단체로 이양하겠다는 정부조직개편심의위원회의 방침에 대해 현실을 외면한 ‘문화재 파괴정책’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문제의 핵심은 지방의 열악한 현실을 외면했다는 사실. 경주에 가보면 사전조사도 하지 않은채 무분별하게 들어서는 아파트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멀쩡한 문화유산이 파괴되고 있는 현실. 경주가 이런데 다른 지방은 오죽하겠는가. 지방자치단체엔 전문인력이 거의 없는데다 예산을 마련한다는 것도 만만치 않다. 경주박물관의 경우 지난해 예산 48억원에 입장수입은 2억원. 문화재 보존연구는 뒷전으로 미루고 수입증대에 나설 것이 뻔하다. 부정하고 싶지만 현실이다. 보존처리 전문가 한명 없는 지방박물관으로선 앞으로 독자적인 발굴 보존도 어려워진다. 현재 각 박물관은 유물을 서로 대여해 전시중이다. 지방 이양이 되면 대여 유물이 모두 원위치로 되돌아가야 하는데 이것도 문제다. 대구박물관은 2천1백여점의 유물중 다른 박물관에서 빌려온 것이 1천5백여점. 이것을 돌려주고 나면 전시할만한 게 거의 남지 않는 최악의 상황이 된다. 지방박물관 인력 3백여명을 문화체육부 감축인원에 포함시킨 것도 말이 안된다. 지방공무원들에게 떠넘기고 감축이라 말하는건 ‘눈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한번 훼손되면 영영 돌이킬 수 없는 문화재. ‘문화재 다루기’는 신중해야 한다. 이광표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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