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이상만/DJ 취임식때 한복 입었으면…

  • 입력 1998년 2월 21일 20시 10분


몇년 전 찬반여론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승만전을 열었던 적이 있다. 그때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 중의 하나가 대통령 취임식에 입고 나왔던 한복 두루마기였다. 엷은 회색빛 천에 옷고름 대신 단추를 단 두루마기. 한국의 대통령 취임식과 한복. 불행하게도 그날 이후로 대통령의 취임식장에서 한복을 입은 대통령의 모습은 다시 찾아볼 수 없었다. 대통령이 한복을 입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의전(儀典)의 형식과 내용에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또 나아가 국가의 통치이념이나 경영방식과도 직접 연관돼 있는 것이다. 유럽에서 대통령 취임식의 의전은 황제의 대관식에서 연유한다. 근대 유럽의 많은 나라의 국가원수 취임식은 나폴레옹의 의례제도가 본이 되었다. 산업혁명 이후 영국에서 의상문화가 발전하면서 영국의 영향이 미치는 곳에서는 모두 영국 옷을 입게 됐다. 영국식 전통을 가장 철저하게 계승한 곳은 일본이 아닌가 싶다. 일본의 각료 취임식에선 아직도 모닝코트를 입고 실크모자를 손에 쥔 부동자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가 결혼식에서 입는 웨딩드레스도 영국 귀족들의 야회복에서 연유한 것이다.한국 사람들의 몸매도 이제는 제법 서양인 체구에 근접해 간다. 얼굴 모습은 물론 심지어 걸음걸이까지 서양 사람처럼 변해 가고만 있다. 하지만 과연 어디까지 서양식을 닮아 가야만 하는 것인가. 간디나 마오쩌둥이 양복을 입은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몽골의 초대 주한대사가 신임장 증정 때 몽골의 고유의상을 입고 칼을 차고 들어오던 광경이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다. 얼마 전 프랑스의 문명비평가 기소르망이 김대중(金大中)차기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그가 받은 첫 대면의 인상을 ‘한국적’이라고 표현한데 대해 깊은 시사를 받았다. 앞으로 얼마 안 남은 대통령 취임식. 이날 취임식에서 김차기대통령이 한복을 입고서 자랑스럽게 취임선서를 하면 어떨까. 이 얼마나 가슴뭉클한 일이겠는가. 앞으로는 문화경쟁의 시대다. 한복이 잘 어울리는 김차기대통령이 한국인의 독창적인 의전을 창조하면서 꿋꿋한 한국인의 기상을 온 세계에 당당히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상만 (음악평론가·국가상징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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