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인준 정국]『자유투표 하라』-『지명자 바꾸라』

  • 입력 1998년 2월 26일 19시 42분


김종필(金鍾泌·JP)국무총리 임명동의안 처리를 둘러싼 여야의 대치전선엔 아직도 팽팽한 긴장만 흐를 뿐 외견상 별다른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JP 인준거부로 사상 초유의 행정공백이 현실화된 26일에도 한나라당은 김대중(金大中)정부에 대해 ‘JP지명 철회’만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여전히 완강한 태도를 보였다. 이에 대해 여당은 “그렇다면 총리서리체제밖에 없지 않으냐”며 암담해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27일 여야영수회담에 한가닥 기대를 거는 분위기가 없지 않지만 객관적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여기에 여권이 검토중인 ‘총리서리체제’를 놓고 정치권은 물론 학계에서까지 위헌논란을 벌이고 있어 인준거부의 파장이 확산되는 모습이다.

○…한나라당 맹형규(孟亨奎)대변인은 26일 주요당직자회의가 끝난 뒤 “여권에서 한나라당이 27일 영수회담에서 모종의 협상카드를 내놓을지 모른다는 얘기가 있다”고 기자들이 물은데 대해 “JP인준거부문제는 협상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서청원(徐淸源)총장이나 이상득(李相得)총무도 ‘협상타결론’에 몹시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당내 소장파 일부에서는 첫날 본회의 불참으로 여권의 ‘고압적인 자세’에 경종을 울린 만큼 이제는 여론을 감안, 무기명 비밀투표에 참여해 부결시키는 방향으로 선회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따라서 ‘부결방법론’의 변화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

반면 국민회의는 한나라당이 당론을 바꾸지 않더라도 크로스 보팅(자유투표)을 채택하기만 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입장이다. 한나라당의 내부사정상 어차피 당론변경은 거의 불가능한 만큼 자유투표를 하게 되면 한나라당내 인준찬성파의 협조로 총리인준 통과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자유투표까지 받아들이지 않으면 더 이상의 협상은 어렵고 ‘총리서리체제’ 등 비상체제를 가동한다는 생각이다.

자민련은 다소 비관적이다. 한나라당이 자유투표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무기명투표에 응하더라도 총리인준안이 부결될 가능성은 여전히 높아 아예 빠른 시일내에 총리서리체제로 가는 것이 낫다는 태도다.

○…여권의 ‘총리서리체제’ 검토안에 대해 헌법학자들 사이에서 위헌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대 김철수(金哲洙)교수는 “헌법상 ‘서리’라는 것은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그러나 국회가 총리 임명동의안을 처리하지 않아 국정공백상태가 벌어질 때는 대통령의 정치행위로 서리를 임명할 수 있고 이는 위헌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김교수는 또 “총리서리는 국무위원 제청권을 가질 수 있으며 그럴 경우 총리서리가 부서한 법률은 효력을 가진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연세대 허영(許營)교수는 “총리서리체제는 민주적 정당성도 없고 대통령이 국회의 견제를 받지 않겠다는 위헌적인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허교수는 “현상황에서 국정공백상황을 피하는 유일한 합헌적 방법은 고건(高建)현총리로 하여금 각료를 제청토록 해 정부를 구성한 뒤 고총리가 사퇴, 수석장관인 재정경제부장관이 총리역할을 대행하는 것밖에 없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학계에서 위헌논란이 일자 한나라당은 즉각 심재철(沈在哲)부대변인의 논평을 통해 “서리체제가 위헌이 아니라는 극소수 학자의 주장을 인용, 위헌상황을 모면하려 해서는 안된다”며 제동을 걸고 나섰다.

〈김창혁·김정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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