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영수회담 대화록-표정]DJ『민심 다시 살피길』

  • 입력 1998년 2월 27일 20시 07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한나라당 조순(趙淳)총재와 낮12시반부터, 자민련 박태준(朴泰俊)총재 국민회의 조세형(趙世衡)총재권한대행 국민신당 이만섭(李萬燮)총재와는 오전8시반부터 각각 1시간반 동안 여야영수회담을 가졌다.

김대통령은 조총재와의 오찬장에 들어갈 때는 굳은 표정이었으나 회동을 마치고 나올 때는 밝은 표정이었다. 김대통령은 회동후 “조총재에 대한 존경과 서로간의 우정을 돈독히 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김대통령과 이총재간의 회동은 시종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다음은 대화록 요지.

◇오찬회동

▼김대통령〓내일중 바로 국회에서 총리인준을 위한 정상적인 투표를 해주십시오.

▼조순총재〓25일에는 물리적으로 충돌이 있을까 해서 표결을 피했습니다.그러나 내일 표결은 어렵습니다.‘김종필(金鍾泌)총리’인준반대 당론은 변경이 불가능합니다.

▼김대통령〓반대하면 했지 표결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헌법위반입니다. 지난번 국회에서 추경예산안이 통과되지 않아 중요한 공사가 지연되는 등 사회적으로 큰 문제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또다시 총리인준 거부로 국정이 마비돼 국제신인도가 추락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총리인준 반대는 한나라당의 자유입니다. 25일 한나라당이 표결로 부결했다면 총리를 재지명해서 새 정부가 어제 정상적으로 출발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왜 길을 두고 뫼로 돌아갑니까.

▼조총재〓우리가 가장 바라는 것은 제1당의 당론을 존중, 김총리지명자가 스스로 용퇴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김대통령이 다른 좋은 분을 다시 지명해주기 바랍니다.

▼김대통령〓다시 총리를 지명하는 것은 자민련과의 합의를 깨는 배신행위입니다.‘김종필총리’지명은 대선에서 국민들로부터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반대한다면 표결로 의사를 표시하면 됩니다.

▼조총재〓이틀간만 여유를 주십시오.

▼김대통령〓한나라당도 과거 국정에 대해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솔직히 뒷수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책임상으로도 그렇고 또 우리는 이제 처음이니까 더욱 한나라당이 도와줘야 합니다. 대단히 미안하지만 한나라당이 민심을 다시한번 살펴보시기를 간곡히 부탁합니다.

▼조총재〓우리도 국정을 일부러 표류시킬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마음이 답답한 것은 우리도 같습니다. 우리도 새 정부의 영광스러운 내일이 있기를 바라며 최대한 협조하겠습니다. 인준문제는 당의 의견을 수렴, 국회법 테두리 내에서 적법하게 처리하겠습니다.

▼김대통령〓정 안되면 총리서리체제로 갈 것입니다. 원치는 않으나 나라를 살리고 국민의 걱정을 덜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과거에도 불가피할 경우에는 총리서리체제로 갔습니다. 더구나 지금의 불가피성은 인위적인 것입니다. 나는 이미 야당에 거국내각 구성을 제의하는 등 성의를 다했습니다. 야당의원들을 빼갈것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럴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대신 야당도 1년간은 우리를 도와줘야 합니다. 우리도 야당때 여당을 많이 도왔습니다. ‘품앗이’하는 차원에서도 한나라당이 그럴 수는 없습니다.

▼조총재〓내각제 개헌을 않겠다는 것을 보장해 주십시오. IMF체제 극복을 위해서도 내각제에 관한 태도를 분명히 밝혀야 합니다.

▼김대통령〓내각제는 자민련과의 기본적인 약속입니다. 나는 안된다고 할 수 없습니다. 야당이 반대하면 안됩니다. 최종적으로는 국민투표로 결정할 일입니다. 하지만 서두르지는 않겠습니다. 한달에 한번씩 야당총재들과 만나 얘기하고 싶습니다. 또 앞으로 전부 또는 일부라도 야당의원들과 만나 얘기하고 싶습니다.

▼김대통령〓지금 경제파탄의 책임문제를 조사하고 있는데 어느 정도까지 하는 게 좋겠습니까.

▼조총재〓가깝게는 재경원당국자 중앙은행 외환담당자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겠지만 당국자들을 넘어 여야 정치권, 금융기관, 기업 모두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삼풍백화점 붕괴책임을 서초구청이나 서울시공무원 몇사람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것처럼 (경제파탄책임도) 몇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무리입니다.

◇조찬회동

▼김대통령〓국민신당은 대선때 5백만표의 지지를 받은 정당입니다. 나라가 어려울 때는 정당대표들과 머리를 맞댈 것입니다.

▼이만섭총재〓야당은 총리인준을 반대하더라도 정정당당하게 투표로 당론을 관철해야 합니다. 여당은 위헌시비를 야기하거나 성급하다는 인상을 주지 않고 인내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김대통령〓지금 국정이 말이 아닙니다. 1백만 공무원들이 일손을 놓고 있습니다.

▼박태준총재〓국제시장의 신용도 하락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새로운 정부조직법이 시행되는 마당에 구정권의 총리가 각료를 제청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이총재〓늦어도 월요일까지는 기다리며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는 자세를 보여야 합니다.

▼박총재〓월요일은 너무 늦습니다. 무한정 기다릴 수 없습니다.

▼김대통령〓이총재 말씀대로 월요일까지는 기다리기로 하죠.

…김대통령과 조총재의 오찬회동에서는 중간중간 세상 돌아가는 얘기도 나누고 토인비나 드러커 등 미래학자들에 대한 얘기도 나눴다.

김대통령은 조총재를 배웅하고 “오늘 회동은 여러 모로 도움이 되는 의미있는 회동이었다”고 평가했다. 조총재는 이날 노란 서류봉투 2개를 지참했다.

김대통령은 조찬회동에서는 “우리가 ‘역적’도 아닌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며 한나라당의 태도에 대해 몹시 안타까워했다고 이총재가 전했다.

○…조총재는 오찬회동을 마치고 당사로 돌아온 뒤 회동내용을 설명하면서 거듭 “빠른 시간내에 국회법에 따라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조총재는 기자들이 김대통령의 ‘적법 처리’는 기표소에 들어가 무기명 비밀투표를 하는 것이고 한나라당의 ‘적법 처리’는 기권이나 백지투표 아니냐고 따져 물은데 대해 “대통령이 투표방법까지 왈가왈부할 수 없는 것 아니냐”며 직답을 피했다.

기자들과 일문일답 도중 김수한(金守漢)국회의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오자 조총재는 “가급적 빠른 시일내에 해야죠”라고 대답한 뒤 “하지만 국회의원들이 다 흩어져 있을 것 아닙니까”라고 덧붙였다. 김대통령이 요구한 ‘28일 표결’은 물리적으로 어렵다는 말이었다.

조총재는 이어 오후4시 소집된 의원간담회에 참석, 회동결과를 설명했다.

〈임채청·김창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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