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의 강력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김수한(金守漢)의장이 투표 무효선언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당은 투표중단 상태에서 임시국회가 폐회됐기 때문에 투표자체의 효력은 상실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따라서 이날 중단된 투표의 법적 효력문제를 놓고 한나라당과의 지루한 공방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만일 투표중단 상황이 법적 구속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판정될 경우는 여권에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것이다.
다음에 열릴 국회에서 개표가 불가피하고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자민련 김종필명예총재를 총리서리로 임명하더라도 개표결과에 따라 그 법적 생명력이 끝날 수 있다.
이때문에 김대중정부가 총리서리체제 출범의 불가피성을 국회가 열려있는 도중에 미리 밝힌 것도 의정을 무시한 독단적 행위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투표를 한 2백1명 중 한나라당이 1백55명으로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국민회의 한 핵심관계자는 “한나라당 투표자중 찬성표를 던진 의원은 단 한사람도 없을 것”이라고 비관적 전망을 했다. 따라서 개표가 진행되면 ‘김총리서리’의 임명동의안은 부결될 것이 거의 확실한 상황이다.
이때문에 여권은 2일 중단된 투표행위의 무효를 주장하며 ‘김총리서리체제’의 출범을 밀어붙이겠다고 밝혔다. 문희상(文喜相)정무수석은 “김종필총리임명은 선택이 아닌 사활의 문제”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장 ‘총리서리’가 장관 제청권을 행사할 경우 위헌시비를 불러일으킬 우려가 크기 때문에 장관제청은 고건(高建)총리가 하도록 하고 곧바로 김종필명예총재를 총리서리로 임명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한나라당은 2일 김종필총리 임명동의안을 무산시키는 데 성공, 당의 구심력(求心力)강화에 일단 성공했다고 보고 대여(對與)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겠다는 전략이다.
이같은 강경방침의 바탕에는 당의 결속을 위해 여당과 또다른 전선(戰線)을 형성할 필요가있는 데다 임명동의안 처리과정에서 여론을 ‘양비론(兩非論)’으로 몰고 가는 데 성공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한나라당은 우선 김대중대통령이 김총리지명자를 총리서리로 임명할 경우 위헌시비를 적극 제기한다는 방침을 세워놨다. 총리서리가 임명될 경우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는 방안도 그 일환이다.
심지어 초선의원 그룹에서는 차제에 ‘김종필의원 제명동의안’을 제출하자는 강경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는 ‘거야(巨野)’로서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배에서 뛰어내리면 손해’라는 인식을 당내에 확산시킴으로써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여권의 의원빼가기에 대응하겠다는 복안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 현재의 한나라당 의석(1백61석)으로 대통령을 제외하고 국무위원 및 검찰총장에 대한 해임건의와 탄핵소추가 가능하다는 점을 대여(對與) 압박전략의 무기로 사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당내에서 제기되고 있다.
여권을 겨냥한 홍보공세도 빼놓을 수 없는 대목. 이번 임명동의안 처리과정에서 ‘여당이 합법투표를 육탄저지했다’는 점을 집중 공격하는 동시에 국정표류의 원인이 ‘DJP’의 내각제추진에 있다는 점을 적극 홍보, 공동정부의 결속력을 깨뜨린다는 구상이다.
또 각 계파 보스로 구성된 중진협의체를 정례화해 당론수렴에 적극 활용함으로써 당의 분열요소를 줄여 나간다는 방침도 세워놓고 있다.
〈이동관·윤영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