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된 투표결과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는 매우 중대한 법리상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날 밤 12시 국회 본회의가 유회돼 자동적으로 폐회되기 전까지 실시된 투표를 ‘유효한 투표행위’로 해석하고, 개표를 한다면 김종필(金鍾泌·JP)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은 부결될 것이 분명하다.
이날 투표에 참가한 사람은 2백1명. 이중 한나라당 의원들의 표가 1백55표다. 이홍구(李洪九) 김종호(金宗鎬) 박세직(朴世直) 이신행(李信行)의원 등을 제외한 한나라당 의원 전원이 투표를 마쳤다.
한나라당 율사출신 의원들의 해석에 따르면 이날 투표는 우선 국회법 테두리내에서 이뤄졌고, 재적의원 과반수 이상이 투표에 참여했기 때문에 유효한 투표행위였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법사위원들은 검토의견서를 통해 “설령 국회의장이 투표종료 선언을 하지 않더라도 밤 12시 임시국회 회기가 종료되면서 투표행위는 끝났다”고 해석했다. 정당한 이유없이 이날중 투표를 하지 않은 사람은 기권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회의 박상천(朴相千)총무는 “국회의장의 투표종결선언 없이 회기가 끝나 자동유회되면 투표는 끝나는 게 아니라 다음 회기로 넘어가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럼에도 다음 임시국회에서 투표함을 열게 된다면 JP총리임명동의안은 부결될 것이 분명하고, 때문에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JP총리서리체제를 강행 출범시키면 중대한 위헌시비에 휘말릴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일각에서 일이 이런 상황으로까지 치달을 경우 김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까지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헌법상 대통령이 직무집행과 관련,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한 때에는 탄핵소추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신범(李信範)의원은 뿐만 아니라 김대통령이 JP를 총리서리로 임명할 경우 법원에 ‘김종필국무총리서리 직무집행정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해, 총리서리로서 국정에 참여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헌법이 ‘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선국회동의’를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박상천총무는 이날 실시된 투표는 모두 ‘무효’라고 주장했다. ‘집단 강압에 의한 공개투표’이기 때문에 무기명 비밀투표로서의 효력을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한나라당은 원내부총무들로 하여금 상임위별로 분담해 투표용지를 가로 한번, 세로 한번 두번씩 접고 가부표시를 하지 말도록 ‘조직적인 백지투표’를 지시했다는 것. 뿐만 아니라 백승홍(白承弘) 이우재(李佑宰)의원이 투표용지를 흔들며 자신들이 부(否)표를 던진 사실을 의원들에게 공개했기 때문에 무효이며 재투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그러나 투표에 참가한 한나라당 의원 모두 기표소에서 정상적으로 기표했다며 국민회의 주장을 일축했다. 또 백승홍 이우재의원이 투표지를 흔든 것은 국민회의 한영애(韓英愛)의원의 ‘강압’에 의한 것이었다고 반박했다. 서울대 권영성(權寧星)교수와 연세대 허영(許營)교수도 이날 투표행위를 ‘적법’한 것으로 해석했다. 권교수는 “현대 정당제에서 당론이라는 ‘당의 강제’는 당연한 것이며 한나라당 의원들이 기표소 근처에서 단순히 서성거리고 있었다면 ‘비밀의 원칙’을 침해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허교수도 “의원들이 어떤 의사결정을 내리더라도 외부에 공표하지 않으면 ‘비밀투표’의 근본취지를 훼손했다고 보기 힘들다”면서 “기표소에 들어가서 기권하든 기권하지 않든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유권해석했다.
유수정(劉秀政)국회입법차장은 이에대해 “오늘 국회에서 일어난 이런 상황은 처음 있는 일이라 적법여부는 좀 더 검토해 볼 수밖에 없다”며 애매한 태도를 취했다.
〈김창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