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서리체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사활(死活)의 문제다. 국가와 국민이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다. 더욱 중요한 것은 국정공백이 더 이상 계속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여권은 총리서리체제가 바람직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는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밝히고 있다.
우선 JP총리의 임명은 정권의 존립근거라는 인식이 확고하다. 대선에서 ‘DJP연합’을 공약으로 내세워 집권에 성공한 만큼 JP를 배제한 ‘김대중정권’은 한쪽 바퀴를 잃어버린 수레와 같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김대통령으로서는 ‘JP서리’체제의 강행은 국무총리 한사람을 임명하는 차원을 뛰어넘는 정권 사활의 문제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때 국민회의 일각에서 “무리하게 서리체제를 밀어붙일 필요가 있느냐”는 목소리가 있었다. 내각제개헌 등 자민련과의 합의이행에 대한 부담감을 떨쳐버렸으면 하는 희망도 섞여 있었다.
반면 자민련에서는 국민회의의 이런 분위기를 감지,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기도 했다. JP부터 김대통령의 ‘속내’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던 적도 있었다.
실제 김대통령이 향후 정치일정 등과 관련해 어떤 마음을 먹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김대통령이 이러한 의혹들을 뿌리치고 일단 총리서리체제를 선택한 것은 ‘JP카드’를 버렸을 경우의 후유증을 우려한 결과로 풀이된다.
경위야 어떻든 JP가 정권에서 배제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지역적으로는 충청권, 계층적으로는 보수층이 대거 이탈하는 사태가 빚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는 그렇지 않아도 허약한 정권의 한쪽 기반이 여지없이 허물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럴 경우 ‘김대중정권’은 출범직후부터 위기를 맞아 결국 주저앉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김대통령으로서는 논란의 소지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여소야대의 구도에 정면대응하기 위해서라도 ‘JP서리’를 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에는 ‘JP국무총리’에 대한 찬성여론이 반대보다 많다는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측면에서 야당이 아니라 국민을 직접 상대해 지지를 이끌어내겠다는 뜻을 표명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또 ‘3·3조각’에서 당출신 정치인들로 대거 채워진 ‘책임내각’을 출범시킨 것도 야당에 더 이상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조한 것이라는 관측도 대두된다.
여권은 그 연장선상에서 ‘JP서리체제’를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계속 유지할 생각을 굳힌 것 같다.
여권은 “총리임명동의안에 대한 재투표를 실시한다면 그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는 있지만 이는 부결의 경우를 상정한 것은 아니다. 또 2일의 본회의투표에 대해서는 무효를 선언한 상태다.
한나라당에 요구하고 있는 ‘정상적인 무기명비밀투표’의 실시도 현재의 여야대치상황에서는 성사될 가능성이 별로 없다.
특히 여권내에 “차라리 부담스러운 재투표보다 서리체제로 가는 것이 낫다”는 견해가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 때문에 임시국회의 조기소집을 통해 ‘서리체제’를 무산시키려는 한나라당과 끊임없는 공방전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또 서리체제에 대한 법적 논란과 뒤얽혀 당분간 ‘태풍의 눈’이 될 전망이다.
〈최영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