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식 직후 배포될 것으로 알았던 취임사도 이틀이나 늦은 27일경에야 직원들의 손에 쥐어졌다. 안기부의 한 인사는 “예전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제1 충성집단’이라할 수 있는 안기부의 대선 이후 모습과 정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부내(部內) 수뇌부 대부분이 ‘반(反)DJ노선’에 섰던 안기부는 지금 김대통령의 개혁주체로서가 아니라 ‘개혁대상’으로 나무 끝에 올라 있다.
안기부개혁의 첫단추는 김대통령의 낙선을 위해 ‘북풍(北風)’사건을 조작한 부내 고위인사들에 대한 진상규명 및 책임자 문책이다. 안기부는 금주중 내부 감사팀을 구성, 권영해(權寧海)전부장 박일룡(朴一龍)전1차장 등 전직간부들과 북풍조작에 관여한 현직 간부들을 대상으로 조사활동을 벌일 계획. 자체조사결과 북풍 조작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관련자들을 모두 검찰에 고발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자체조사의 후속타는 대대적인 인사개혁이 될 전망이다. 우선 김현철(金賢哲)씨 인맥이나 한나라당 모의원 직계로 알려진 상당수의 간부들을 인사조치할 가능성이 높다.
또 다른 정부부처에 비해 터무니없이 높아진 직급을 하향조정하고 대대적인 인원감축 작업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전체직원의 10%선인 6백∼7백여명의 직원을 명예퇴직 등의 방법으로 정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안기부의 기능이나 성격도 크게 변화할 것 같다. ‘음지’에 가려있던 업무의 상당부분을 ‘양지’로 드러내 국내정치개입을 지양하고 경제 대북관련 정보 등을 각 부처와 공유하는 방향으로 양성화할 예정이다. 국내외에서 수집한 고급 정보들을 대통령에게 보고한 뒤 사장(死藏)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 기관은 물론 야당이나 민간기업에도 제공한다는 것이다.
경제 과학 기술분야의 고급두뇌들도 상당수 특채할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언론매체 청취기관인 내외통신의 운영방법도 개선, 국내 언론이 외국 언론을 통해 북한언론보도를 전재(轉載)하는 불합리한 관행도 없애기로 했다. 공보관 제도도 적극 활용해 국내 언론에 대한 정기 브리핑제도를 도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개방’을 향한 안기부의 개혁은 피할 수 없는 대세로 굳어지고 있다.
〈윤영찬기자〉